학오(學吾) 신동준은 고전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과 사람의 길을 찾는 고전 연구가이자 역사문화 평론가다. 아울러 21세기 경영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그는 격동하는 동북아시대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기 위해 동양고전의 지혜를 담아 다양한 조직의 현대적 비전을 꾸준히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일찍이 경기고 재학시절 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학의 대가인 청명 임창순 선생 밑에서 사서삼경과 『춘추좌전』, 『조선왕조실록』 등의 고전을 배웠다. 서울대 정치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등에서 10여 년간 정치부 기자로 활약했다. 1994년에 다시 모교 박사과정에 들어가 동양정치사상을 전공했고, 이후 일본의 동경대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을 거쳐 「춘추전국시대 정치사상 비교연구」로 모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꽃 지는 시절 그대를 다시 만나다』, 『조조처럼 대담하라』, 『제갈량처럼 앞서가라』 등 다수가 있다. 책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자. 유방은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자신이 품은 뜻을 펼쳤다. 더불어 상대에 맞춰 허리를 숙이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가차 없이 밀고 나가기도 하는 카멜레온 같은 처세를 보였다. 또한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사람을 수용했던 백지와 같은 사람이었기에 뜻이 있는 인재들이 곁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모인 사람들을 온전히 자신의 사람으로 활용했다. 이 책은 혼란의 시대, 수많은 결점과 열위에도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된 유방의 리더십에 주목한다. 중국 역사상 최초로 천하를 통일했던 진시황이 죽자 난세(亂世)가 도래하는데, 그러한 혼란 속에서 중국 역사상 두 번째로 천하를 통일한 사람이 유방이다. 저자는 비천한 가문, 미관말직에 무일푼, 학식도 부족했던 유방이 어떻게 천하의 주인이 되었는지 살펴본다. 저자는 흙수저 유방이 금수저 황우와의 치열한 쟁투 끝에 천하를 통일하기까지의 과정은 난세를 헤쳐나가는 처세와 함께 조직을 이끌어가는 지혜를 보여준다며, 유방의 처세술과 소통의 지도력은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자기관리나 기업 조직 관리에도 귀중한 지침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유방은 정장으로 있을 때 죽순껍질로 제작하는 모자인 죽피관을 만들었다. 도적을 잡는 휘하의 포졸을 죽피관 장인이 있는 설현으로 보내 이를 배우게 했다. 유방은 늘 죽피관을 머리에 썼다. 천자가 되어서도 그랬다. 이른바 ‘유씨관(劉氏冠)’은 바로 이 죽피관을 지칭하는 말이다. - 「고조본기」’ 정장으로 있던 유방이 자신의 휘하를 설현으로 보내 관을 만들도록 한 것은 당시 죽순껍질로 만든 죽피관(竹皮冠)이 크게 유행했음을 암시한다. 유방은 이를 크게 유행시킨 장본인이었다. 「고조본기」에는 천자가 된 뒤에도 이를 계속 쓰고 다니는 바람에 후대인들이 기존의 ‘죽피관’을 ‘유씨관’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대략 두 가지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첫째, 기존의 죽피관이 매우 멋스러웠던 까닭에 유방 스스로 이를 상용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 유방의 ‘건달’ 기질이 적극 발현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둘째, 자신의 기호를 천하제일의 유행으로 만든 뒤 많은 사람들에게 이를 허용해, 갓 출범한 한나라의 건국 기반을 다지고자 했을 가능성이 크다. 천자가 된 뒤에도 정장 때부터 늘 착용한 죽피관을 계속 썼다는 「고조본기」의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천자가 된 뒤에도 계속 ‘유씨관’을 썼다면 항우에 의해 한왕에 봉해졌을 때도 틀림없이 이를 썼다고 보아야 한다. 한왕은 제후에 불과했기에 그렇다 치더라도, 지존무상의 천자의 자리에 오른 뒤에도 이를 계속 쓰고 다닌 속셈은 무엇일까? 유방은 황제가 된 뒤 조칙을 내려 작위가 공승 이상이 아니면 ‘유씨관’을 쓰지 못하게 했다. ‘유씨관’을 쓸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인 공승은 유방이 처음으로 벼슬을 지낸 정장 수준의 하급 관원에 지나지 않는다. 군대로 치면 하사관 정도 수준이다. 정장 밑의 소졸 정도를 제외하고는 관원의 이름을 단 사람은 거의 모두 ‘유씨관’을 쓸 수 있었던 셈이다. 거의 모든 관원이 천자가 쓰고 다니는 ‘유씨관’을 합법적으로 착용할 수 있었던 셈이다. 진시황이 조서를 내려 1인칭 보통명사에 지나지 않았던 ‘짐(朕)’이라는 용어를 오직 천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특수 용어로 제한한 것과 대비된다. 관인(寬仁)하다는 세평을 듣고자 했을 가능성이 높다. 진시황과 대비시켜 갓 출범한 신생 제국인 한나라의 건국 기반을 확고히 다지고자 한 것이다. 「고조본기」에 ‘유씨관’에 관한 기사가 유방이 젊었을 때 이미 황제의 기상을 보였다는 기사 다음에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유방이 나중에 황제가 된 뒤에도 젊었을 때의 기본자세를 잃지 않았다는 사실을 은연중 강조하려는 의도가 짙다. 유방은 역대 왕조의 황제 가운데 미천했을 때의 의관을 천자가 된 이후에도 계속 애용한 유일무이한 사례에 속한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며 천하를 일거에 삼키는 이른바 탄천하(呑天下)의 기개를 보인 진승이 겨우 천자도 아닌 진왕의 자리에 오른 뒤 한미했던 시절을 흔적도 없이 지우려다가 패망한 것과 대비된다. 존귀해진 뒤에도 한미했던 시절을 잊지 않는 자세는 각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석권하고자 하는 기업 CEO들이 귀감으로 삼을 만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천하는 늘 『주역』이 역설하고 있듯이 잠시도 쉬지 않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을 행하는 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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