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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모든 죽음에는 이유가 있다(강신몽 지음)

by 미건주 2020. 5. 17.

모든 죽음에는 이유가 있다 강신몽 지음 이다북스 / 2019년 8월 / 368쪽 / 16,500원

저자 강신몽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군의관으로 복무할 당시 삼청교육대에서 실려 나오는 주검들을 지켜보면서 법의학을 전공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법의학과장, 법의학부장을 거쳐 연구소장을 지냈다. 그 후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의 법의학 교수로 근무했으며, 정년을 마치고 명예교수로 있다. 대한법의학회 회장으로 일했으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자문위원과 대검찰청 자문위원, 국방과학수사연구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객원법의관이라는 직함으로 실무에 종사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의 손을 거쳐 간 변사체는 7,000구에 달한다. 저서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관들과 함께 쓴 타살의 흔적이 있다.

 

Short Summary

 

다양한 사건들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그중에서 살아 있는 이들을 가슴 아프게 하는 사연이 적지 않고, 의외의 결말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경우도 있으며, 떨쳐내고 싶은 기억으로 남는 것들도 있다. 그리고 작은 방심으로 인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 일도 흔하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검시 전문가는 물론 의사의 세심한 관찰과 치료가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의 운명을 가를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럴수록 더욱 죽음의 이유를 찾는 검시의학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모든 죽음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고, 그것을 찾는 것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정이다. 검시의학은 오감을 총동원해 변시체의 죽음을 풀어내는 것이 목표다. 그 안에서 죽음의 이유를 찾고, 그로써 죽은 사람에게 원통함이 없도록 풀어주어야 한다.

이 책에는 주검과 마주하는 저자가 겪은 사건들, 우리를 애틋하고 때로는 불안하게 했던 사건들, 우리 실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건들을 모았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일어나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도 담아보았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삶의 지혜를 얻고, 죽은 이에게 작은 위로라도 된다면 이 책을 펴낸 보람이 있을 것이다. 다만 검시의학을 다루다 보니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전문 용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되도록 쉽게 풀어 쓰려고 했다. 아울러 이 책의 내용은 주로 저자의 경험을 토대로 했으며, 일부는 각종 법의학 교과서나 논문, 보도매체 등 다양한 자료를 인용했음을 밝혀둔다.

 

차례

 

1하나의 죽음, 두 개의 시선

 

알리바이가 맞지 않는다 / 왜 그곳에 멍자국이 있을까 / 죽음을 해석하는 유일한 단서 / 요양원 살인사건의 진실 / 상처가 크다고 살의마저 클까 / 경찰이 몸속까지 수사하는 것은 아니다 / 하나의 죽음, 두 개의 시선 / 그의 몸에서 살구씨 냄새가 난다 / 함부로 먹지 말고, 함부로 단정하지도 마라 / 시간을 어긴 몸이 말하고 싶은 것 / 사소하지만 사소할 수 없는 / 그 사람의 말은 믿을 수 있을까 / 자기 발목을 잡은 진술

 

2부검과 진실 사이에서

 

검안과 부검으로 현장을 읽는다 / 살리려는 마음이 오히려 범행 증거로 / 의심하지만 추정해야만 할 때 / 검안만으로 죽음을 단정할 수 없다 / 사인불명이라고 써야 할 때 / 그날 두고 온 것들 / 가슴에 한 발, 머리에 두 발 / 자살하기에 충분한 조건인가 / 삶을 되돌리지 못한 1센티미터 / 자해는 어떻게 판단하는가 / 외상과 손상 / 검시의학이 밝히지 못한 그날들 / 의심하지 않으면 진실은 묻힌다 / 사인은 부검으로만 찾는 것이 아니다 / 사소한 것들의 결정적인 기억 / 사인의 선택

 

3모든 죽음에는 이유가 있다

 

그녀가 진정 끊고 싶었던 것은 / 사연 없이 지는 삶이 있으랴 / 보이지 않아서 더 치명적인 / 죽음에 이르는 착각 / 밀폐된 공간에서 얼마나 살 수 있을까 / 그녀가 그곳에서 잠든 이유 / 그들의 죽음과 숨은그림찾기 / 욕조 속의 신부들 / 야산에서 발견된 시체 한 구 / 총알은 어디에서 어디로 들어갔을까 / 그들의 몸속에 남은 것 / 멍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 폭식은 스스로 병들게 한다 / 무슨 힘이 어떻게 목에 가해졌는가 / 숨이 붙어 있는 곳은 안녕합니까 / 그 시간, 그녀가 놓친 것

 

4나는 다만 해석할 뿐이다

 

찢어진 혈관이 가리키는 그날 / 썩은 시체도 다시 보자 / 죽음의 흔적과 현장 사이에서 / 부검 소견만을 근거로 할 때 / 부패망과 약물중독 / 그들은 치료하고 우리는 해석한다 / 검시의는 셜록 홈즈가 아니다 / 음식물 뒤에 가려 있는 것 / 타이타닉을 다시 떠올리는 이유 / 물에 빼져 죽으면 모두 익사일까 / 뇌출혈이라고 모두 병인성은 아니다 / 뇌진탕을 사인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 그 엽총의 게이지는 얼마나 될까 / 영혼이 돌아올 안식처, 미라 / 대한민국을 뒤흔든 살인마들

 

5때로는 죽음이 삶보다 가깝다

 

술 마신 죄, 술 마신 탓 / 가볍게 마셨지만 되돌릴 수 없는 / 결코 남 일이 아닌 가정폭력 / 그들 곁에 머문 곤충 한 마리 / 사람이 몰리면 위험도 몰린다 / 한증막증후군을 아십니까 / 수조 안에서 그들을 부여잡은 것 / 안전벨트를 매고 있습니까 / 안전벨트가 불편하다는 핑계 / 지금 과식하고 있다면 / BMI는 얼마나 됩니까 / 숨통을 틔워야 삶이 열린다 / 노르웨이를 충격에 빠뜨린 덤덤탄

 

내용요약

 

1장 하나의 죽음, 두 개의 시선

 

죽음을 해석하는 유일한 단서

 

그는 왜 논바닥에서 죽었을까: 1990년대 초,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2월이었다. 나는 그때만 해도 사건현장 근처에 있는 병원으로 출장을 나가 부검하곤 했다. 계획된 부검을 마치고 돌아서려는데 수사관들이 다가왔다. “변사체가 한 구 더 있는데, 사전에 접수하진 못했지만 오신 김에 부탁드립니다.”

설명에 따르면, 그날 아침 도로변 논바닥 위에서 한 남성의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신원을 파악해보니 60세의 정현수 씨였다. 그는 그 전날 회사에서 퇴근해, 저녁을 먹으려다가 친구의 전화를 받고 외출했다. 친목계원 6명과 어울려 음식점에서 소주 4병을 나누어 마신 그는 그중 한 명과 다른 술집에 들려 맥주를 10병 나누어 마셨다. 술을 마신 후 그가 먼저 나섰는데, 친구가 술값을 계산하고 나와 보니 그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서성이며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친구는 그가 술에 취해 먼저 집에 간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도 귀가했다. 그런데 다음 날 그가 변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소식을 듣고 찾아온 유가족들은 소지품 중 없어진 것은 없다고 확인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시체에 나타난 상처 그리고 그간의 행적으로 볼 때 그가 술에 취해 현장에서 추락해 사망한 것으로 판단했으며, 강도의 소행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누군가와 시비를 벌이다가 떨어졌을 가능성, 차량에 부딪히거나 차량을 피하다가 떨어졌을 가능성, 실수로 떨어졌을 가능성도 있다면서 설명을 마쳤다.

 

바지 지퍼는 열려 있었습니까”: 그런데 부검해 보니 시체의 이마 한가운데에 T자 모양으로 찢긴 커다란 상처가 있었으며, 그 주변의 피부는 비교적 넓고 부정형하게 까져 있었다. 전체 크기는 가로 8센티미터, 세로 6센티미터 정도였다. 그 외에도 얼굴 오른쪽에는 눈썹에 작은 찢긴 상처, 눈 부위에 작은 피부 까짐을 동반한 피부 밑 출혈이 있었고, 광대뼈 부위도 조금 까져 있었다. 더구나 찢긴 상처 안쪽에는 흙도 묻어 있었다. 평편하면서도 거칠고 단단한 물체에 부딪힌 전형적인 손상이었으며, 얼어붙은 논바닥이라면 매우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오른쪽 허벅다리 바깥쪽에는 피부가 비교적 크게 까져 있었고 오른쪽 무릎 아래쪽에도 피부가 조금 까져 있었는데, 쓰러지면서 생긴 상처로 보였다. 찢긴 상처가 있는 이마 아래에는 광범위한 출혈이 있었다. 경추 앞쪽에 비교적 넓은 출혈이 있었고, 경추는 제5, 6번 사이에서 골절되었으며, 경추강 속과 경수 실질에서도 출혈이 보였다. 시체가 치워져 있었지만 현장을 살펴보고 담당 경찰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시체가 발견된 논은 공사장 도로변에 있었고, 논바닥은 얼어붙어 돌처럼 단단했으며, 논두렁의 높이는 2.5미터 가량 되었다. 발견 당시 시체는 반듯이 누워 있었고 옷과 양말은 제대로 신고 있었다. 상의는 약간 말려 올라가 있었으며, 점퍼와 상의는 단추가 열려 있었다. 바지 왼쪽 주머니에는 지폐 몇 장과 머리빗이 삐죽이 나와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도로가에서 논바닥을 향해 앞쪽으로 고꾸라지면서 떨어졌고, 논바닥에 이마를 부딪히면서 목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으며, 거기에 추위가 더해져 사망한 것으로 보는 데 문제가 없었다. 부검과 현장조사를 통해 사인을 좀 더 명확해지기는 했지만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경찰관들에게 바지의 지퍼나 단추가 어떤 상태였느냐고 물어보았다. 바지는 지퍼였는데 완전히 내려져 있었으며, 혁대는 풀지 않은 상태였다고 했다. 추락한 사람에게는 바지의 지퍼가 내려와 있거나 단추가 열려 있다면 소변을 보거나 보려다가 고꾸라져 떨어졌다는 좋은 근거가 된다. 반대로 지퍼가 터져 있거나 단추가 떨어져 나갔다면 교통사고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서 강력한 충격을 받았다는 근거가 된다. 나중에 나온 그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6퍼센트였다. 술에 취해 소변을 보다가 논바닥에 떨어진 것이었다.

 

하나의 죽음, 두 개의 시선

 

자살이라는데 자살 같지 않네요”: 무더운 여름날, 사무실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는데 부검실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날 부검을 담당하고 있는 동료 의사였다. 방금 부검을 끝냈는데 사건이 조금 이상해 상의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부검실에 가보니 40세가 될까 말까 한 여자가 이미 부검을 마친 상태로 부검대 위에 누워 있었다. 담당 의사는 부검 소견으로 보면 타살로 판단되는 데 담당 수사관은 자살이 틀림없다고 했다. 사건은 이랬다.

그녀는 인가가 몇 채 안 되는 허름한 동네에서 남편과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술주정이 심해 남편에게 매일 얻어맞곤 했다. 전날도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온 아내가 눈을 뜨자마자 아침부터 술타령이어서 화가 난 남편이 나무랐고 부부싸움이 시작되었다. 싸움이 커져 급기야 집 앞 골목길까지 나와 다투었다. 싸우는 소리에 이웃사람 둘이 밖으로 나왔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부부가 집 앞에서 다투고 있다가 여자가 갑자기 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부엌칼을 들고 나와, 자신의 가슴에 칼을 대고 죽어버리겠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화가 치민 남편은 그런 아내를 말리기는커녕 그래 죽어 버려. 마음대로 해!”라고 했고, 그녀는 정말로 자기 가슴을 찔렀다. 남편도 같은 말이었다.

 

그래 죽어버려. 마음대로 해”: 동료 의사는 사건 내용도 그렇고 시체를 처음 보았을 때 왼쪽 가슴에 칼자국이 하나 있어서 별다른 의심이 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부검해 보니 심장을 뚫고 들어간 찔린 상처의 각도가 자살로 보기에는 곤란했다. 칼은 왼쪽 가슴 먼 족에서 흉골판과 약 30도 정도의 예각을 이루면서 찌르고 있었다. 칼의 모형으로 재현해보니 스스로 찌르기에는 몹시 어색했다. “칼로 자살한다면 이렇게 몸을 비틀어서 가슴에 칼을 꼽겠습니까?” 부검 의사가 담당 수사관에게 물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자살 사건을 왜 귀찮게 만드느냐는 표정이던 담당 수사관도 그제야 이해가 가는 듯했다. 그날 오후, 수사관은 담당 의사에게 남편이 자백했다고 전화를 걸어왔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건의 전말이 이랬다. 그는 고물장사를 하면서 어렵게나마 살림을 꾸려가고 있었다. 10여 년 전에 그녀를 만나 어려운 중에서도 재미있게 살아왔다. 그런데 3, 4년 전부터 그녀가 술을 마시기 시작해, 근래 들어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무 때나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하면 아무 데서나 잠을 자는 등 행실까지 곱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자기가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하고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탓으로 돌리며 살아왔다. 그런데 정도가 점점 심해져 갔다. 자연히 부부싸움도 잦아지고 서로 치고받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그녀를 때려서라도 같이 살려고 했다고 말했다.

 

목숨을 바꾼 단 하나의 칼자국: 그날도 예외 없이 집 안에서 부부싸움을 하던 중 그가 손찌검을 하자 맞고 있던 그녀는 너 죽고 나 죽자며 부엌칼을 들고 그에게 덤벼들었다. 그는 정말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 겁이 나 집 앞 골목길로 피해 나왔는데, 그녀는 그곳까지 따라와 칼을 휘둘렀다. 그녀가 술에 취해 있다 보니 칼은 쉽게 빼앗을 수 있었다. 그는 칼을 빼앗으면서 순간적으로 나를 죽이려는 정도까지 되었으니 당신을 죽이고 나도 죽는 게 피차 편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빼앗은 칼로 또다시 덤벼드는 그녀의 가슴을 찔렀다. 그녀는 그대로 쓰러졌고, 보고 있던 동네 사람 둘이 달려왔다. 남편은 당황해하다가 아내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그 칼로 자신을 찌르려 했고, 그 순간 동네 사람이 칼을 빼앗으며 말렸다.

그녀를 병원으로 옮긴 후 남편과 목격자들의 모의가 시작되었다. 이웃 사람인 목격자들은 그녀의 소행을 평소 괘씸하게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두 사람은 그녀가 스스로 가슴을 찔렀다고 말을 맞추고 남편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러나 경찰관이 부검 결과를 알리고 추궁하자 남편은 더 이상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2장 부검과 진실 사이에서

 

검안과 부검으로 현장을 읽는다

 

강간으로 보이지만 상처가 없다면: 늦은 봄날, 동이 트자마자 김 씨는 여느 날처럼 마을 뒷산에 약수를 뜨러 나섰다. 오솔길을 오르던 순간 그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눈에 들어온 것은 여자의 시체였다. 그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이 시체를 살펴보니 아랫도리는 벗겨져 있고 얼굴과 손은 상처투성이였다. 경찰은 직감적으로 강간피살 사건을 떠올렸다. 죽은 여인은 그리 멀지 않은 마을에 살고 있었다. 동네사람에 의하면 그녀의 두 아들 모두 도회지에 나가 공장에 다니고 있으며, 그녀는 혼자 살면서 산나물을 캐러 자주 산에 다녔다고 한다. 경찰은 그녀가 산나물을 캐러 다니다가 우범자들에게 성폭행당한 후 피살된 것으로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얼굴은 상처로 범벅되어 있었다. 손등에도 상처가 많았다. 그런데 벗겨진 아랫도리에는 아무런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얼굴과 손의 상처는 넓게 퍼져 있지만 모두 깊지 않았고, 무엇엔가 쓸린 듯 보였다. 시체를 열어 보니 왼쪽 갈비뼈가 뒤쪽에서 여러 개 부러져 있었다.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부러진 끝이 폐를 찔러 출혈로 사망한 것이었다. 갈비뼈가 부러진 모양이나 높이로 짐작할 때 소형 트럭 종류의 차가 뒤에서 들이받은 것으로 보였다. 경찰에게 물어보니 시체가 발견된 곳은 찻길에서 약 5미터 떨어져 있다고 했다. 사건을 풀어보기 위해 경찰을 앞세워 시체가 발견된 현장으로 가보았다.

 

사안을 밝히기 전에 챙겨야 할 것: 현장은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찰에게 작은 트럭이 뒤에서 여자의 등 오른쪽을 들이받아 갈비뼈가 부러졌으며, 고꾸라지면서 찻길 옆에 돌이 섞여 있는 풀숲으로 나뒹굴어 얼굴과 손등에 상처가 난 것 같다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범인은 강간을 위장하기 위해 여자를 약 5미터 정도 옮겨 놓은 뒤에 아랫도리를 벗겨 놓았기 때문에 아무런 상처가 없는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건은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동네에서 한 집이 수리했는데, 거기에 소형 트럭이 드나들고 있었다. 수사선상에 오른 트럭 운전사는 양심의 가책에 못 이겨 자백했다.

그는 그날 공사를 끝내고 좁은 찻길을 과속으로 달리다가 앞에서 걸어가는 여자를 발견하고는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차에서 내린 그는 여자를 일으켜보았지만 겁이 나고 무서운 생각만 들 뿐이었다. 얼른 여자를 치워야겠다는 생각에 여자를 업고 오솔길로 들어섰지만 다리가 후들거려 더는 걸어갈 수 없었다. 여자를 내려놓고 강간처럼 보이게 하려고 아랫도리를 벗겼다.

검시의학은 검안과 부검을 통해 사인 외에 사건의 정황을 밝힐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부검에서 얻은 결과를 토대로 사건과 죽음이 언제, 어디서, , 어떻게 일어났는지 밝히거나 근거를 제시하는 것도 검시의학의 역할이다.

이 사건에서 부검한 다음 이 사람은 갈비뼈가 부러지고 폐가 터져 죽었습니다하고 끝냈다면 수사는 조금 어려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수사관들은 엉뚱한 범인을 찾아 헤매고, 인근 마을의 불량청소년들은 모두 한 차례씩 고초를 겪을 수도 있다. 그리고 사건이 미궁에 빠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검시는 검안과 부검에만 머물지 않는다. 정황을 읽을 줄 알아야 사인도 선명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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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하지 않으면 진실은 묻힌다

 

시체에서 의심 가는 점은 없었다”: 그는 젊어서부터 손수 일구어 온 회사를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직접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요즘 들어 몸에 자꾸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1년 전에 건강검진을 받아보니 혈압이 높다고 해서 지금까지 매일 약을 복용해왔다. 한 달 전부터는 머리도 아프고 말도 약간 더듬는 증상까지 나타났다. 하지만 일에서 손을 떼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회사에 출근했다. 아침 745분쯤 사무실에 도착했는데, 운전기사는 그를 출근시킨 후 여느 때와 같이 그의 집으로 돌아가서 잔심부름을 했다. 비서와 집사를 겸하고 있는 기사가 그의 집에 가거나 외출하면 그는 사무실에 혼자 남아 있곤 했다. 오후 330분쯤 사무실로 돌아온 기사는 430분쯤 그를 퇴근시키기 위해 사무실로 들어가 소파에 앉아 있는 그에게 퇴근하셔야죠?”하며 말을 걸었다. 그러나 그는 머리를 뒤로 젖힌 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기사는 급히 119구급차를 불러 그를 근처에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로 후송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그의 시신을 검안한 응급실의 의사는 사인미상이라는 시체검안서를 발부했다. 경찰이 담당 의사에게 물어보자 시체에 특별히 의심이 가는 점은 없었습니다고 대답했다. 경찰은 사망 현장에서도 특이점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주변 인물들의 진술에서도 별다른 문제점을 찾지 못했다. 유족들도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은 물론 부검도 원하지 않았다. 경찰은 정황을 종합해볼 때 정확한 사인을 알 수는 없지만, 고령에 고혈압과 신경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이 사망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타살 혐의는 없는 걸로 결론지었다. 경찰의 판단에 따라 자녀들은 그의 시신을 병원 영안실에 안치한 후 장례를 준비했다. 그런데 외국에 살고 있던 딸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귀국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싶다며 가족들에게 아버지의 시신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오빠들은 여자라는 이유로 들어주지 않았다. 그녀는 아버지가 사망한 지 이틀이 지난 후 혼자서 몰라 안치실을 찾아갔다.

 

영안실에서 찾아낸 사건의 실마리: 딸의 눈에는 아버지의 목에 무언가에 눌려서 난 것 같은 상처가 보였다. 딸은 이 사실을 가족들에게 말했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대학의 법의학 교수를 찾아가 시신을 한번 봐달라고 부탁했다. 교수는 목에 난 상처가 죽기 전에 난 것으로 보인다며, 사진을 찍은 후 수사를 의뢰하라고 조언했다. 그녀는 경찰을 찾아가 사건을 재수사해달라고 요청했고, 경찰은 다시 안치실을 찾아갔다.

그의 목과 등에는 무언가에 눌린 듯한 손상이 뚜렷하게 나 있었다. 부인에게 물어보니 남편이 사망하기 전날 저녁 8시경 목욕할 때 등을 밀어주었는데, 당시 목과 등에서 상처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경찰은 다른 가족들과 회사 직원들에게도 상처가 발생한 경위를 물어보았지만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경찰은 결국 부검을 의뢰했으며, 부검은 다음 날 시행되었다.

양쪽 눈꺼풀에는 수많은 점출혈이 있었으며, 눈 주변의 피부와 구강 점막에도 무수한 점출혈이 보였다. 턱 가운데 바로 아래쪽에 직경 1센티미터 정도, 그리고 그 주변에 가로 1.8센티미터, 세로 0.8센티미터 및 직경 1센티미터 정도, 그리고 목의 오른쪽에 가로 5센티미터, 세로 2센티미터 정도 압박에 의한 피부 까짐이 보였다. 목을 열어 보니 턱 가운데에서 직경이 1센티미터 정도 되는 물렁조직출혈이 보였으며, 갑상연골의 왼쪽 부위에 있는 근육에 크기가 가로 2센티미터, 세로 2.5센티미터 정도 되는 출혈이 있었고, 그 하방에 직경이 각각 약 1센티미터와 0.3센티미터 정도 되는 출혈이 보였다.

갑상연골의 골막하에서도 크기가 가로 2센티미터와 세로 2.3센티미터 되는 출혈이 보였다. 갑상연골의 오른쪽 부위의 근육에서도 크기가 각각 가로 2센티미터와 세로 3센티미터, 가로 1센티미터와 세로 1.5센티미터 정도, 그리고 직경이 0.3센티미터 정도 되는 출혈이 보였다. 뿐만 아니라 설골은 왼쪽 끝으로부터 약 2센티미터 정도 되는 부위에서 부러져 있었고, 갑상연골은 왼쪽 상각의 기저부에서 골절이 보였다.

결국 그가 목이 눌려 죽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범인은 그의 주변 인물로 곧 검거되었다. 그날 범인은 그 앞에 선 채로 소파에 앉아 있는 그의 목을 오른손으로 약 7, 8분 가량 힘을 다해 눌러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경찰은 왜 그것을 보지 못했을까: 아들은 그가 사망한 날 오후 530분경 병원의 응급실에서 아버지의 목 부위에 작은 상처가 보여 담당 의사에게 물어보았다. “상처가 왜 났는지 정확히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상처 때문에 사망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들은 의사의 말을 듣고 더 이상 상처를 의심하지 않았다. 경찰관들도 이 상처를 보았지만 그 정도가 경미했기 때문에 그를 구조하거나 이송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판단했다. 상처의 사진을 찍어 수사 서류에 첨부해놓은 것을 봐도 경찰이 이 상처를 간과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담당 수사관은 부검하던 날 아침, 부검대 위에 놓인 그의 시신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참 이상합니다. 시신을 처음 봤을 때는 목의 상처가 이렇게 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딸의 신고를 받고 다시 갔을 때는 지금 보는 것과 같이 크고 뚜렷했습니다.”

그의 말은 처음 시신을 보았을 때 목의 상처가 지금과 같은 정도였다면 애초에 부검을 의뢰했을 것이라는 의미로 들렸다. 그렇다. 피부가 눌리거나 까지면 그 당시에는 경미하게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부위가 주변보다 빨리 건조되어 갈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처음 보았을 때보다 넓고 뚜렷하게 나타난다. 담당 수사관으로서는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작더라도 목에 있는 상처의 의미는 중대한다. 목에 상처가 왜 생겼는지 의심을 풀어야 한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의심하지 않으면 진실은 묻히고, 사소한 것에서 풀어낸 퍼즐은 진실로 가는 시작이다.

 

3장 모든 죽음에는 이유가 있다

 

그녀가 그곳에서 잠든 이유

 

‘30대 여인 논바닥에서 강간피살’: 여자가 야산이나 논밭에서 벌거벗고 죽은 채 발견되었다면 어떤 사건일까? 누구나 성범죄를 생각할 것이다.

겨울날 새벽, 담이 제법 큰 김 씨는 혼자서 어두컴컴한 논두렁을 걸어가다가 논바닥 위에 묶어 놓은 짚단 옆에 사람 같은 물체가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기분이 섬뜩했지만 호기심도 나고 정말 사람인지 확인도 해볼 겸 다가갔다. 틀림없는 사람이었다. 만져 보니 이미 식을 대로 식은 차디찬 시체였다. 여자의 아랫도리는 벗겨져 있었다. 휴대 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김 씨는 한걸음에 달려가 마음에 있는 파출소에 신고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여자의 아랫도리와 양말이 벗겨져 있고, 윗도리도 위로 밀려 올라가 있으며, 주먹으로 맞은 듯 얼굴 곳곳에 멍이 들어 있고, 팔다리 여러 곳에 긁힌 상처가 있는 점 등을 근거로 강간 살해 사건으로 판단하고 수사본부를 설치했다. 그 지역의 신문들은 벌써 <30대 여인 논바닥에서 강간피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누가 벗긴 게 아니라 스스로 벗었다?: 다음 날 부검을 했다. 얼굴의 상처는 비록 범위가 넓었지만 사망 원인이 되지는 못했다. 팔다리에도 상처가 있었지만 모두 약간 긁힌 정도였다. 그 외에 목이 눌린 자국이나 목을 눌렀다고 볼 만한 아무런 소견도 보이지 않았다. 심장이나 뇌 등에서도 죽을 만한 원인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사인은 무엇이며, 상처는 왜 생겼고, 더구나 하의는 왜 벗겨졌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사인은 저체온사, 흔히 말하는 동사다. 그러면 왜 몸의 이곳저곳에 상처가 생기고 옷은 벗겨져 있을까?

저체온사를 간단히 알아보자. 적절한 보온 수단 없이 추운 날씨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체온이 떨어지면서 정신활동은 둔해지고 환각 상태에 빠진다. 저체온으로 사망하는 사람들 중에는 술을 마신 경우가 많은데, 술 때문에 운동실조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고는 정처 없이 배회하다가 넘어지고 떨어지고 기어 다니면서 몸 이곳저곳을 다친다. 이 과정에서 특히 얼굴이나 손과 같이 노출된 부위, 그리고 무릎이나 팔꿈치 등 기는 부위를 많이 다친다.

옷은 누가 벗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벗는다. 그 이유는 아직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았지만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환각 상태에서 옷을 벗어젖힌다는 설이다. 하지만 다른 학설은 더욱 설득력이 있다. 인체의 체온이 어느 정도 떨어지면 심장이나 뇌 같은 중요 장기를 보호하기 위해 팔다리에는 혈류 공급이 중단된다. 때문에 팔다리는 몸체보다 훨씬 빨리 차가워진다. 그러나 말기 상태가 되면 중요 장기를 보호하려는 생체활동이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한다. 그러면 몸체만 순환하던 비교적 더운 피가 팔다리에 다시 돌아 팔다리는 오히려 열감을 느끼고 옷을 벗는다.

 

그녀는 왜 추운 날 옷을 벗었을까: 언뜻 생각하기에 추위로 죽은 사람은 체온을 빼앗기지 않으려 옷을 여미고 몸은 잔뜩 웅크린 채 발견되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옷을 벗은 상태에서 네 활개를 펴고 죽는 것은 결코 드문 현상이 아니다. 이를 이상탈의라고 한다.

사인이 저체온사이며 옷을 벗은 것이 이 현상에 의한 것임을 확인하려면 사건 현장과 그 주변, 그리고 변사자의 행적을 조사해야 한다. 탈의는 양말만 벗는 경우부터 전라가 되는 경우까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대개 신발과 양말, , 장신구 또는 소지품 등이 사건 현장 주변에 여기저기 널려 있어서 찾기가 어렵지 않지만 때로는 수백 미터에 걸쳐 서로 떨어져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이 사건에 생각을 더해보면 시나리오를 그려볼 수 있다. 30대가 아니라 44세로 밝혀진 그녀는 혼자 살고 있었다. 그녀는 전날 밤 술집에서 친구와 술을 거나하게 마신 후 집으로 돌아간다며 버스를 탔다. 하지만 내릴 정거장을 지나쳐 사건이 난 지역에서 내렸다. 집에 가려고 했지만 술기운에다 엉뚱한 곳에 내린 탓으로 방향감각을 잃었다. 날씨는 춥고 체온이 떨어지면서 정신은 자꾸 몽롱해졌다. 논으로 들어가 헤매다가 기어 다니기도 했고 두렁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어느 순간 더운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옷을 벗었다. 짚단을 발견하고는 그곳에 누웠다. 그렇게 숨소리는 점점 옅어져 갔다.

 

4장 나는 다만 해석할 뿐이다

 

검시의는 셜록 홈즈가 아니다

 

그녀가 청산을 먹고 쓰러졌어요”: 경찰서에 한 남자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같이 있던 여자가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했다고 신고했으며, 그녀의 이름은 김경희로 24살이라고 했다. 경찰관들이 그가 말한 장소에 가보니 그는 없고, 외진 찻길에서 30미터쯤 떨어진 채소밭 한가운데에 승용차가 한 대 서 있었다. 여자는 완전히 벌거벗은 채 승용차 조수석에 비스듬히 기대어 죽어 있었다. 차 안에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일부 잘려서 떨어져 있었으며, 그녀의 겉옷은 물론 팬티와 브래지어마저도 칼에 찢겨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부검해 보니 그녀의 목에는 3개의 작은 까진 상처가 있었다. 두정부에는 두 곳에 조그만 머리덮개 밑 출혈이 있었고, 허리와 팔다리 곳곳에 걸쳐 작은 피하출혈이 10여 군데 있었다. 배를 열어 보니 위에서는 청산 특유의 냄새가 풍겨왔고, 혈중 청산이온 함량은 3.9피피엠이었다. 사인은 청산중독이 틀림없었다. 도망 다니던 남자는 이틀이 지나 제 발로 경찰서를 찾아왔다. 남자는 그녀의 애인으로 유부남이었으며 금형공장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두 사람은 차 안에서 무엇을 했을까: 사건이 일어나던 날, 그녀가 드라이브를 시켜달라고 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나지막한 야산 밑을 지날 때 그녀는 밭에 차를 대자고 했다. 차를 댄 후 그녀는 애인이 곧 생겨 곧 결혼하기로 했으니 헤어지자고 했다. 그녀는 한참 울더니 지금이 제일 좋다, 조수석에 있던 카터칼로 자신의 옷을 모두 찢어 벗어버리고는 섹스를 하자고 했다. 10여 분간 성행위를 한 후 남자는 그녀를 자신의 티셔츠와 바지로 덮어주고 자신은 런닝셔츠와 팬티만 입고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이 순간이 제일 행복하고 좋아라고 하더니 차 안에 있던 음료수를 일회용 종이컵에 따라 마셨다. 그녀는 종이컵을 원래 있었던 곳에 반듯이 올려놓으면서 곧바로 웩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녀가 몸트림하는 것을 보고 즉각적으로 청산을 마셨다는 것을 알아채고 차에서 뛰어나와 휴대전화로 그녀가 청산가리를 먹고 죽었다며 신고했다. 그리고는 무서워서 도망쳤다.

청산가리는 그가 공장에서 쓰는 것으로, 거래처에서 수리할 때 열처리에 필요하기 때문에 4~6그램 정도를 항상 차에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그녀는 가끔 그의 차를 대신 세차해주기도 했기 때문에 차 안에 청산가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음료수는 그녀 집에 가는 길에 사둔 것이었다.

Don’t be Sherlock Holmes: 사인은 검시나 부검으로 명백히 밝혀지지만 자살인지 타살인지 구별되지 않아 답답한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이 사례처럼 독물을 마시고 사망한 경우다. 물론 많은 양을 먹어야 죽거나 역한 냄새가 나는 독물을 마셨을 때는 대개 자살이다. 그러나 냄새도 특별하지 않고 적은 양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독물을 먹고 죽으면 자기가 먹었는지 남이 몰래 먹였는지 구별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의 진술도 특이할 뿐만 아니라 사건 후 그가 보인 행동에도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더구나 경미하더라도 온몸 여기저기에 난 상처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살인 냄새가 나는데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럴 때 검시의사로서 무언가 말해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몸 여기저기에서 보는 손상을 근거로 강제로 성행위를 했다거나 강제로 독을 마시게 했다고 추론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렇다고 반대로 이런 소견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오직 있는 그대로 수사관에게 알려준 다음 조용히 수사를 지켜보는 것이 옳다. 그들은 여러 방면으로 수사해서 타살이나 자살의 확증을 잡으려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수사관들이 검시의사를 다시 찾을 것이다. 검시의학에 이런 격언이 있다. ‘Don’t be Sherlock Holmes.’ 검시의사는 과학자일 뿐 수사관이 아니다.

 

5장 때로는 죽음이 삶보다 가깝다

 

안전벨트를 매고 있습니까

 

안전벨트는 초보운전자나 하는 것?: 도로 주행 중에는 왜 안전벨트를 매야 할까? 차량 사고는 정면충돌, 측면충돌, 후방충돌, 구르기 및 추락 등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차가 강한 충격을 받으면 차 안에 있는 사람은 좁은 공간 내에 한쪽 방향으로 돌진하며, 그 이후에는 상황에 따라 또 다른 방향으로 몸이 쏠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 결과 탑승자의 몸은 불가피하게 차량의 내부 구조물에 부딪힌다.

통계에 따르면 승용차를 기준으로 할 때 운전자는 운전대에 의한 손상이 90퍼센트로 가장 많고, 다음은 전면 유리창에 의한 손상이 55퍼센트, 계기반에 의한 손상이 48퍼센트이며, 조수석 탑승자는 전면 유리창에 의한 손상이 70퍼센트로 가장 많다. 뒷좌석에 탄 사람은 앞쪽 의자에 부딪히는 경우가 가장 많다. 이런 충격에 의해 탑승자들은 얼굴과 머리 그리고 가슴이나 배에 충격을 받는다. 그 결과 안면골, 두개골, 늑골, 흉골 및 척추 등의 골절은 물론 폐나 심장의 찢긴 상처와 멍 그리고 간, 콩팥, 횡격막이나 대동맥의 파열, 목뼈 골절이나 탈구와 같은 손상을 받을 수 있으며, 이런 손상은 때로 치명적이다. 차량의 내부 구조물에 의해 손상을 받은 후에는 간혹 깨진 유리창이나 충격을 받고 열려진 문을 통해 차 밖으로 이탈한다. 그 결과 몸이 노면에 떨어지면서 또 다른 충격을 받고 이어서 다른 차량에 깔림으로써 더 심한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

 

생명을 지키는 것은 실력이 아니다: 그러면 안전벨트의 역할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안전벨트는 이런 손상을 모두 최소한으로 막아준다. 안전벨트는 몸을 좌석에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차내 구조물에 부딪히는 것과 차 밖으로 이탈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승용차에 부착되어 있는 일반적인 안전벨트는 폭이 5센티미터 정도이고 몸에 걸쳐지는 길이는 100센티미터 정도다. 그 때문에 몸에 가해지는 충격은 약 500제곱센티미터의 면적에 분산된다. 이에 반해 안전벨트를 매지 않아 머리가 전면 유리창에 부딪히면 그 면적은 불과 10제곱센티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같은 무게를 지닌 망치와 프라이팬 같은 철판에 비교할 수 있다. , 10제곱센티미터의 면적을 가진 망치로 머리를 때리는 충격과 넓이가 500제곱센티미터 되는 프라이팬으로 가슴을 때리는 것을 비교해보면 어느 쪽이 더 치명적인지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여기에 더해 안전벨트의 탄력성과 이완성을 감안하면 그 효과를 더 잘 알 수 있다.

 

지금 안전벨트를 매고 있습니까: 몸이 안전벨트 자체에 부딪혀 일어나는 경미한 손상은 불가피하지만, 안전벨트를 매지 않아서 생기는 손상과의 차이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몸이 안전벨트 자체에 부딪혀 일어나는 경미한 손상마저도 최소로 줄이려면 안전벨트를 제대로 매야 한다. 안전벨트는 두 군데를 고정시키는 2점식과 세 군데를 고정시키는 3점식이 주를 이룬다. 고속버스나 승용차는 거의 모두 3점식이다. 3점식이 더 효과적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3점식에서 아랫배를 옆으로 지나가는 부분은 양쪽에 만져지는 골반뼈에 걸치고, 가슴을 빗겨 지르는 부분은 빗장뼈 중간을 지나가게 해야 하며, 모두 최소한의 여유만 두고 몸에 밀착시켜야 한다.

안전벨트를 매면 사망이나 심각한 손상이 20~25퍼센트 정도 줄어든다는 것은 각국의 통계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생명과는 무관하더라도 인체의 가장 중요한 부위 중 하나인 얼굴과 눈의 손상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안전벨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안전벨트를 맸더라도 사망이나 중상을 입는 것은 대개 충돌할 때 엔진 부위와 운전대가 안으로 밀려들어오거나, 차가 찌그러지거나, 의자가 바닥에서 떨어져 안전벨트의 효과를 무효화시키거나 크게 줄어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를 단단하게 만들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으며, 안전벨트에 더해 에어백이나 에어커튼도 등장했다. 한번 충격을 받았던 안전벨트는 탄력성이 떨어져 다음에 다시 충격을 받으면 끊어질 염려가 있으므로 반드시 갈아주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차에 불이 나거나 차가 물에 빠졌을 때 안전벨트를 푸는 데 시간이 걸리거나 풀리지 않아서 탈출하는 데 불리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억지를 부리려면 무슨 말인들 하지 못할까. 참고로, 관계기관은 20121124일부터 시외버스와 전세버스 그리고 택시의 모든 좌석에서 안전벨트 착용을 의무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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