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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회사 남여(조세핀 최, 신이지 지음)

by 미건주 2020. 6. 11.

회사 남여 조세핀 최, 신이지 지음 두앤북 / 2019년 3월 / 291쪽 / 14,000원

저자 조세핀 최, 신이지

 

조세핀 최 -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한 후 패션 잡지 에디터로 경력을 쌓았다. 한번 시작한 일은 끝을 보고야 마는 성격이지만, 한곳에 안주하는 것을 참지 못해 여기저기를 떠돌았다. 제과기능사가 되어 빵을 만들고, 대한민국 제1호 슈퍼모델의 홍보책임자로 일하는 등 다방면에서 끼와 재능을 발휘했다. 모 국책연구소의 대외홍보 담당자를 끝으로 공식적인 직장 생활을 접은 뒤로는 프리랜서 마케터로 활동하며 해외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를 비롯한 유수 기업들의 국내 론칭을 주도했다. 지금은 서래마을에서 가족과 함께 산책을 즐기며, 프리랜서 마케터로, 잡지 기고자로 살고 있다.

 

신이지 - 20여 년간 외국계 기업과 국내 대그룹 계열사의 HR부서에서 실무와 이론을 축적해온 전문가. 직원들을 이끄는 책임자로, 직장인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멘토로 전방위적 활동을 해오면서 기업들의 성차별적 문화와 리더들에게 부족한 젠더 감수성의 문제가 심각함을 절감하고, 양성평등의 문화구축과 남녀의 파트너십 형성에 관한 연구와 강의에 힘써왔다. ‘남녀가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며 협력하는 문화가 개인과 조직을 성장으로 이끈다는 믿음으로 활력과 에너지가 넘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곰처럼 뛰고 있다. ‘페미니즘을 연구하는 아빠들의 모임-대디베어를 운영 중이다.

 

Short Summary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보편화되면서 전에는 생각지 못한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 승진의 기회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을 가하는 유리천장이나 사회적 이슈가 된 성희롱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자주 피부로 다가오는 문제는 함께 일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남녀가 함께 일하니 분위기가 좋아졌다는 견해도 있지만, 참 어렵다고 토로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데, 그 이유가 뭘까?

깊고 오랜 고정관념과 편견 때문이다. 남자들은여자가~’, 여자들은남자가~’라는 프레임으로 서로에게 주홍글씨를 새겨 차이를 강조하고 단절과 차별을 내면화한다. 어떻게 이 간극을 메울 수 있을까? 그리고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줄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조직을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책은 복잡하고도 미묘한 회사에서의 남녀관계에 메스를 들이댄다. 함께 일하는 공간에서 남녀의 차이가 어떻게 갈등으로 번지고, 오랫동안 조직에서 묵인되어온 왜곡과 차별의 작동 원리가 무엇인지 그 실체를 낱낱이 밝힌다. 나아가 회사의 남녀가 서로를 대해왔던 생각과 태도에 숨어 있는 뿌리 깊은 인식의 프레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쉽지 않은 남녀관계의 벽을 허물고 서로의 차이를 장점으로 승화시켜 이제껏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조직, 활력이 넘치는 분위기, 놀라운 성과를 창출하는 팀워크를 완성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참고로 이 책은 픽션과 논픽션으로 이루어져 있다. 픽션 부분에서는 회사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을 중심으로 남직원들과 여직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대립, 화해를 보여줌으로써 당면한 위기를 넘어 강력한 조직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그리고 논픽션 부분에서는 남녀 직원들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과 살펴야 할 내용들은 소개한다.

 

차례

 

Prologue - 우리가 하나된다면

 

. CARTA DO AMAZONES - 아마조네스로부터의 편지

# 수상한 아이코서히드런 / 01. 쉽지 않은 시작 / 02. 여왕의 전략 / 03. 두 인간의 대립 / 04. 중재의 손길 / 05. 소문의 정체 / 06. 불만 폭발 / 07. 부회장의 초대 / 08. 누가 옳은가 / 09. 위기의 순간 / 10. 그들의 신경전 / 11. 꼬임에 넘어가다 / 12. 새나간 비밀 / 13. 편견과 위안 / 14. 결전의 날 / 15. 이탈자 / 16. 차이를 넘어 / 17. 찾아온 평화 / 18. 변화를 앞두고 / 19. 그와 함께 춤을

 

. HOW CAN WOMEN AND MEN BE ON ONE TEAM? - 우리는 어떻게 원팀이 될 수 있을까?

PRELUDE

여검사라 하는가 / 여자랑 일하기 힘들어요

WORK

남직원은 사람을, 여직원은 내용을 본다 / 거시남, 미시녀의 진실

수다를 떨게 하라 수다를 / 오빠는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다름

PEOPLE

여자들은 의전에 약하다? / 여자 상사는 불편하다?

누나가 지켜줄게 / 남녀 사이의 거리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여자의 적은 여자? / 멘토-멘티는 동성끼리?

LIFE

모여서먹는회식, 뉘우치고탄식하는회식 / ‘집사부일체가 꿈의 직장을 만든다

남자는 당황했고, 여자는 침착했다 / 여자가 일하면 출산율이 떨어진다?

POSTLUDE

여성 1는 사표를 썼을까? / 원팀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Epilogue - 다르지만 즐거운, 몰랐지만 놀라운

 

참고자료

 

내용요약

 

CARTA DO AMAZONES - 아마조네스로부터의 편지

 

# 수상한 아이코서히드런

 

기내에 불이 꺼지자 배선태 부장은 눈을 감았다. ‘, 정말 쉽지 않은 일정이었어.’ 40대 후반의 나이, 남미 3개국을 넘나들며 소화한 79일간 출장 일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그의 심신을 더욱 무겁게 만든 것이 있었다. 어제 날짜로 발행된 한국 경제지의 1면을 장식한 기사였다. ‘영교상사와 YG패션 통합, YG코퍼레이션으로 새롭게 출범

두 회사 모두 YG그룹의 계열사로, 영교상사는 창업주의 큰딸이, YG패션은 셋째아들이 이끌어가고 있었다. 따라서 두 기업의 합병이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영교상사의 제품기획팀과 YG패션의 상품개발팀을 통합한 뒤 다시 둘로 나누어 YG코퍼레이션의 개발기획팀과 제품전략팀으로 만들겠다는 결정은 그에게 놀라운 일이었다. 그가 바로 영교상사의 제품기획팀 팀장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은 그가 지시만 내리면 예썰(Yes, sir!)’ 하며 출동하는 여덟 남자를 거느렸던 팀장에서, 밀라노 패션위크와 뉴욕 매스티지 브랜드의 한국 론칭쇼 현장을 누비며 한 손에는 클러치를, 다른 한 손에는 샴페인잔을 들었던 여직원 다섯이 포함된 9명의 팀원들을 이끄는 팀장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배 팀장은 옆자리에 있는 사내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표지오 대리, 어제 이메일로 합병되는 회사 조직도 받았다고 했지? 우리 사장님 승진하시는 거 맞아?” “, YG코퍼레이션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조직도 맨 위에 있었다니까요. C, E, O! 이렇게 찍혀서요.” “YG패션 조세호 사장님은?” “경영본부장인가, 운영본부장인가로 우리 사장님, 아니 우리 부회장님 밑에 있었고요. COO 직함으로요.” 배 팀장은 다시 한 번 신문의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사진 속 합병의 주역 중 한 명인 영교상사의 대표이사는 보수적인 가풍의 YG그룹 가문의 딸답지 않게 일찍 회사 경영에 참여하고 싶어 했다. 그러다 보니 어른들로부터는 눈총과 구박을, 남자 형제들로부터는 견제와 무시를 받아왔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감내하며 현재의 자리에 올라서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법을 익혔다. 배 팀장은 그가 부장이었을 때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여 18년간 줄곧 같은 부서에서 일해 왔다.

, 잊어먹기 전에 이거 가져가세요. 엊그제 부장님께서 사신 걸 제가 여태 갖고 있었네요.” 연녹색빛이 감도는 낡은 목각조각이었다. 아이코서히드런(Icosahedron, 20개의 정삼각형으로 이루어진 정이십면체)처럼 생긴 그것은 각 면에 좁쌀만한 크기의 글씨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글자의 크기가 워낙 작은 데다 오랜 시간 닳고 없어져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좀처럼 읽을 수 없었다.

에콰도르의 소도시 코카에서 브라질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프란시스코 데 오레야나 국제공항으로 향할 때였다. 호객행위를 하고 있던 50대 후반의 아주머니와 마주쳤는데, 그가 정이십면체 목각조각을 건넸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가져가요.” 잠시 실랑이가 벌어졌다. 결국 1달러짜리 몇 장을 주고 목각조각을 받아든 배 팀장은 가방을 메고 옆에 서 있던 표 대리에게 맡겼었다. 그때 공항 쪽으로 가려던 배 팀장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이건이름이 뭡니까?” “Carta do Amazones! 아마조네스로부터의 편지!” 그러고는 씩 웃어 보였는데 그 표정이 왠지 낯이 익었다.

 

쉽지 않은 시작

 

합병작업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진행되었다. 배 부장이 팀장을 맡게 된 개발기획팀은 배 팀장을 포함하여 모두 10명이 한 팀이 되어 일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정확히 남자 다섯에 여자 다섯이었고, 직급 역시 남녀 부장 1명씩, 차장도 1명씩, 사원도 1명씩 딱딱 맞았다. 다만 남자 직원은 대리가 2명인 데 비해 여자 직원은 과장 1명에 대리가 1명이라는 사실이 조금 다른 점이었다. 배 팀장이 출장에서 돌아와 회사에 출근한 월요일 배 팀장은 팀원들끼리 인사도 나눌 겸, 앞으로 어떻게 일할지 이야기도 할 겸 잠시 회의를 하자고 했다. 그런데 전화 받느라 회의실에 늦게 들어온 고미정 과장 때문에 남자직원과 여자직원 사이에 말다툼이 일어났다. 의외의 상황에 당황한 배 팀장에게 전 YG패션 상품개발팀장이자 현 YG코퍼레이션 개발기획팀의 차석이 된 윤이화 부장이 다가왔다. “팀장님과 제가 직원들을 다독이고 나서 오후에 다시 회의를 여는 게 어떨까요?”

 

여왕의 전략

 

며칠 뒤, “배선태, 어때? 새로운 팀원들이랑 손발은 잘 맞아?” “, 부회장님.” 배 팀장은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했다. 조선아 부회장은 배 팀장을 앞에 앉혀놓고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배 팀장이 물었다. “부회장님, 혹시 무슨 근심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무래도 세호가 나를 몰아내려고 하는 것 같아. 상사랑 패션이랑 합병해서 명목상으로는 나를 CEO로 추대하고 자기가 COO를 맡았지만, 올해 안에 나를 퇴진시키고 자기가 CEO 자리를 차지하려는 모종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 같아. 회사를 위하고 시장이 원한다면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날 수도 있어.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내가 물러나더라도 YG를 맡게 될 사람은 조세호가 아니고,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좀 나서줘야겠어.”

잠시 후, 조 부회장이 말을 이었다. “회사를 다시 나눌 거야. 물론 합병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실제로 분할하기는 어렵고 회사 내부적으로 조직 운영을 그렇게 하겠다는 거지. 사업 영역과 매출 규모, 향후 시장 전망 등을 고려했을 때 사업 거점은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모로코의 탕헤르, 중동과 아시아를 잇는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그리고 북미와 남미를 잇는 멕시코의 과달라하라야, 이 세 곳을 거점으로 별개의 사업본부 조직을 만들어서 서로 경쟁하며 성장하도록 하고, 그들이 향후 3개의 회사로 커나가도록 만들 거야. 당분간은 조세호 사장이 전체 총괄을 맡겠지만, 각 거점을 맡은 조직에 사업계획 수립 및 실행, 예산 편성 및 집행, 그리고 인사에 관한 전권을 부여할 거니까 거점별 사업본부가 제대로 자리만 잡으면 조 사장이 개입할 여지는 거의 사라질 거야.”

그럼 제가 해야 할 일이.” “모로코 탕헤르나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비해 멕시코의 과달라하라는 지사의 규모나 조직이 거점으로 삼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아. 자네가 팀을 이끌고 과달라하라로 가서 조직을 재편하고 사업 전략을 새롭게 수립해주는 역할을 해줬으면 해.”

 

두 인간의 대립

 

회의하자는 배 팀장의 말에 이번에는 모두 제시간에 회의실로 모였다. 배 팀장이 회의의 취지만 간략하게 전달하고 나서 안두호 차장이 전체적인 설명을 이어갔다. 조선아 부회장이 구상한 거점별 사업 본부 설립 계획과 준비가 덜 된 과달라하라의 조직에 대한 지원 방안이었다. 설명을 마친 안 차장이 자리로 돌아가자 배 팀장이 수첩을 펼쳐 팀원별 담당 업무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저기질문 있는데요.” 노옥선 차장이었다. 순간 남녀 직원들의 표정이 묘하게 엇갈렸다. “방금 전 안 차장께서 설명하신 내용에서 궁금한 점이 있어서요. 안 차장님은 혹시 멕시코라는 나라에 가보신 적은 있나요?” “허 참! 노 차장, 내 전공이 뭔지 알아요? 서어서문학이에요. 멕시코를 가봤냐고요? 내가 영교상사 밥만 15년인데, 참 어이가 없네. 도대체 뭐가 문제인데요?” “멕시코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마치 멕시코를 다녀오시거나 살다가 오신 것처럼 말씀을 하셔서요.” 배 팀장이 물었다. “그래서 노 차장이 궁금한 건 뭐죠?” “아까 안 차장이 보고하신 내용은 지나치게 미국 관점에서, 멕시코시티 중심으로 정리하셨는데,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아서요.”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안 차장이 보고한 내용에 대한 점검으로 이어졌고, 일부 사항에 대해서는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30분 정도로 예상했던 회의가 쉬는 시간을 포함해서 2시간 넘게 진행되었다. 그 후 배 팀장이 회의를 종료하면서 말했다. “각자 담당하게 된 업무에 만전을 기해주시고, 이번 일은 회사 안팎에 새나가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COO 직속조직 쪽으로는 절대 알려지면 안 됩니다.”

 

중재의 손길

 

안 차장, 저한테 시간 좀 내줄래요?” 윤이화 부장이 직접 안 차장의 자리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지하에 있는 커피전문점에 자리를 잡았다. 윤 부장은 컵을 만지작거리다가 어렵게 입을 떼었다. “어찌 되었든 잘 부탁합니다. 앞으로 우리 팀에서 안 차장님이 큰 역할을 해주셔야 하니까요. 겪어보니 남자 직원과 여자 직원 사이에는 커뮤니케이션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그렇죠?” “글쎄요. 굳이 말하자면 남자는 txt, 여자는 jpg?” 얼마 후 배 팀장이 팀원들을 자신의 방으로 불러 미팅을 진행했다. “일단 고미정 과장이랑 오성두 대리가 선발대로 먼저 가서 수고를 해줘요. 멕시코시티에 가면 영교상사 소속으로 일했던 현지인이 합류해서 도움을 줄 거예요. 한국에서는 우빈이와 지아 씨가 고 과장이랑 오 대리가 맡고 있던 업무를 백업하는 걸로 하고.”

 

소문의 정체

 

커피를 마시려고 탕비실로 들어선 표지오 대리는 순간 움찔했다. 여직원 서넛이 커피를 마시며 비밀 이야기라도 나누듯 속닥거리고 있었다. 한 사람은 같은 팀원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른 팀 소속이었다.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를 건넨 표 대리는 커피를 뽑자마자 밖으로 나왔다. 다음 날, 회의가 소집되었다. 안 차장이 소집한 회의였다. 배 팀장과 윤 부장은 없었고 안 차장과 노 차장 이하 남녀 직원들만 참석했다. 회의실로 모이자 안 차장이 입을 열었다. “부장님께서 그렇게 보안에 신경을 쓰라고 신신당부하셨건만, 일부 직원이 COO 쪽 사람들과 사적인 대화를 나눈다는 얘기가 들려서 다시 한 번 주의를 당부하기 위해 모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어제 오후 탕비실에서 표 대리와 마주쳤던 오지아가 표 대리를 째려보았다. 잠시 후 둘은 언성을 높이며 다투었다.

그때 배 팀장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안 차장과 노 차장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아무 일도 아니라며 회의를 끝내려고 했다. 배 팀장이 다 모인 김에 간단히 회의를 하자며 그들을 붙잡고 말했다. “다음 달에 조세호 사장께서 멕시코로 출장을 가신다고 하는데, 왜 가는지 혹시 아는 사람 있나? 사업전략팀 마태호 부장이 수행해서 다녀오신다는데.” 오지아가 말했다. “휴가 가신대요. 로스앤젤레스에 유학 중인 큰딸 졸업식에 참석했다가 가족과 함께 멕시코 칸쿤으로 여행을 다녀오신대요. 마 부장은 우연히 샌디에이고 출장 일정이 잡혀 로스앤젤레스까지만 동행하는 건데, 말이 부풀려진 거고요.” 배 팀장이 오지아에게 물었다. “우리 지아 씨는 어떻게 그런 정보를 알고 있지?” 오지아가 안 차장과 표 대리를 한 번씩 째려본 뒤 대답했다. “탕비실에서 수다 떨다가요.”

 

불만 폭발

 

유희아 대리가 중얼거렸다. “어라, 이게 아닌데.” “, 뭐가 잘못됐어?” 고미정 과장이 물었다. “우빈 씨가 보내온 자료가 포맷도 다르고, 폰트도 안 맞아서요.” “불러서 물어봐.” “우빈 씨, 잠깐만요.” 조우빈은 유 대리가 두어 번을 더 부르고 나서야 느릿느릿 일어났다. 유 대리는 기분이 상했다. “우빈 씨, 이거 포맷이 왜 이렇죠? 폰트도 전혀 안 맞고.” “어차피 최종적으로 자료를 취합하는 사람이 다 종합해서 한꺼번에 맞추면 되는 거 아닌가?” “뭐예요?” 유 대리의 말은 거의 고함에 가까웠다. 사무실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동시에 두 사람에게로 쏠렸다. 조우빈 역시 지지 않고 맞섰다. 사무실 안쪽 미팅룸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배 팀장과 윤 부장이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나왔다. 배 팀장이 조우빈에게 뭐라고 하려는 순간 윤 부장이 그를 제지하며 조용히 말했다. “팀장님, 이번에는 제게 맡겨주시면 안 될까요?” 두 사람이 윤 부장을 따라 미팅룸으로 들어갔다. 어색해진 분위기에 나머지 팀원들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유 대리와 조우빈이 미팅룸에서 나오더니 각자의 노트북을 챙겨가지고 함께 사무실을 나갔다. “윤 부장, 쟤네한테 뭐라고 했기에 저렇게 고분고분해진 겁니까?” “별거 있나요. ‘너네 친하게 안 지내면 둘 다 확 잘라버릴 거다!’ 겁 좀 줬죠.”

 

부회장의 초대

 

배 팀장의 진행 보고를 들은 조 부회장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집으로 배 팀장과 팀원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다. 맛있는 요리와 함께 조 부회장이 돌린 술이 몇 순배 돌고 나자 처음의 서먹한 분위기가 많이 풀어졌다. 웃고 떠드는 사이 시간은 금방 흘렀다. 배 팀장이 일어나 조 부회장에게 말했다. “마무리할 시간이 된 것 같은데, 우리 멤버들에게 좋은 말씀 한 마디 해주시지요.” 조 부회장은 언젠가 책에서 읽었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플라톤이 지은 대화편가운데 향연이라는 책이 있어요. 그 책에서 유명한 희곡 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가 이런 얘기를 합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의 몸에 머리가 둘, 팔과 다리가 각각 네 개인 형태였다. 그러다 보니 다른 동물들은 그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고, 그 때문에 오만해진 인간들이 자꾸 신에게 도전하자 화가 난 제우스 신이 그런 인간을 반으로 쪼개버려서 현재와 같은 남자와 여자 둘로 분리된 인간이 만들어지게 되었다라는. 물론 과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지극히 신화적, 상징적, 은유적인 표현이겠지요. 하지만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이 이야기를 거꾸로 생각해보면, 우리 남자와 여자, 여자와 남자가 서로 뜻을 모아 하나로 힘을 합친다면 과거 제우스 신이 두려워했던, 그런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말이에요.” 그 말에 사람들은 숙연해졌다.

 

위기의 순간

 

선발대로 떠난 고미정 과장과 오성두 대리는 LA국제공항 환승구역에 있었다. “! 이걸 어쩌지?” 중요한 뭔가를 빠뜨린 모양이었다. “다시 뒤져봐.” 오 대리는 다시 주머니를 뒤지고 메고 있던 백팩까지 탈탈 털어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안내방송에서는 탑승시각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내용을 내보내고 있었다. 초조해진 오 대리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그때 찰싹 소리가 났다. 고미정 과장이 오 대리의 목덜미를 때린 것이었다. “! 오성두, 정신 차려! 이 비행기 못 타면 다음 비행기 타고 가면 돼! 티켓팅 비용? 걱정 마. 나 원월드(oneworld) 마일리지 많아. 어차피 다 써야 돼! 여권도 영사관 친구한테 부탁하면 해결할 수 있을 거야.”

1%의 다정함도 없었지만 고 과장의 말에서 묘한 힘이 느껴졌다. 넋을 놓고 있던 오 대리는 그 말에 이성을 찾고 인천공항에서부터 지금까지 거쳐 온 곳들을 되짚어 보았다. “허드슨 뉴스!” 오 대리의 외침에 고 과장이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20분 전쯤, 기내 잡지는 식상하다며 보그를 사다달라는 고 과장의 부탁을 받고 오 대리가 LA국제공항 면세구역에 있는 허드슨 뉴스라는 서점에 갔었다. 고 과장이 그걸 기억하고 재빨리 달려간 것이다. 잠시 후 오 대리 앞에 항공권을 사이에 낀 여권을 흔들어 보이며 고 과장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탑승구를 향해 내달렸다.

그날 밤 11, 고 과장과 오 대리는 과달라하라의 리우플라자호텔의 라운지바 블루문에 앉았다. 오 대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과장님, 고마워요.” “뭐가요?” “솔직히 영교상사와 YG패션이 통합되고 저희 팀과 개발기획팀이 한 팀이 되어 같이 일해야 한다고 했을 때 팀원들의 불만이 대단했어요. 여자들이랑 무슨 일을 하겠냐면서요.” 오 대리의 말에 고 과장이 장난스레 대꾸했다. “우린 한강으로 뛰어들려고 했어요. 영교상사 아재들이랑 일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러나 오 대리는 웃지 않았다. “그런데 아까 제가 여권과 항공권을 잃어버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과장님이 그러셨잖아요. 걱정하지 말라고, 티켓은 다시 끊으면 된다고. 그 말씀이 정말 큰 힘이 되었어요. 그 순간 얼마나 의지가 되었는지 몰라요. 그러면서 정신이 들어 허드슨 뉴스가 생각났어요. 전에는 영교상사의 고참들만 선배로 생각했고 남자들만 진정한 동료가 될 수 있다고 여겼는데제 생각이 틀렸습니다.

꼬임에 넘어가다

 

안두호 차장이 점심을 함께 하자는 말에 유희아 대리는 당황했다. 나이 차가 많은 상급자와의 식사가 달갑지 않거니와 요즘 들어 부쩍 자신에게 친절한 안 차장의 태도가 영 부담스러웠다. 그렇지만 밥을 사겠다는 상사의 청을 대놓고 거절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안 차장이 유 대리를 데리고 간 곳은 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이었다. 고가의 음식을 먹으면서도 유 대리는 왜 나한테만 이런 대접을 해주는 거지?’ 하는 생각에 불안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안 차장이 말했다. “유 대리도 알다시피 내가 해외 현장에 대해서는 조금 어둡잖아. 그래서 말인데, 한 가지 부탁이 있어. 유 대리랑 오지아 씨가 우리 경쟁사인 대영상사의 중남미사업 관련 자료를 취합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나한테 공유 좀 해줄 수 있을까?” “그게요, 팀장님께서 다른 사람한테는 절대 알리지 말고 본인한테만 보고하라고 하셨는데.” “그것도 알아. 절대 아는 체하지 않고 나만 보고 폐기할 테니까 지금까지 만든 자료만 보내주면 돼. 알았지?” “.

 

새나간 비밀

 

배 팀장이 무슨 문제가 생긴 듯 어두운 얼굴이 되어 사무실로 들어왔다. “잠깐 회의실로 모여봐요.” 심상치 않은 느낌에 팀원들은 잰걸음으로 움직였다. “내가 그렇게 보안에 만전을 기하라고 했는데도 우리가 하는 작업 내용이 조세호 사장님과 다른 조직에 다 퍼졌나 봐요.” “어머! 어쩌다가.” 노 차장이 깜짝 놀라 손을 마주 쳤고, 다른 직원들도 놀란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난처한 상황이지만 오히려 잘됐습니다. 이번 일을 교훈 삼아 더욱 언행을 조심해주시고 업무 추진에 좀 더 속도를 내주기 바랍니다.” 조우빈이 물었다. “저기, 팀장님. 근데누가 우리 정보를 외부에 흘렸을까요?” 팀원들을 둘러보던 조우빈이 뭔가 발견한 듯 물었다. “안 차장님이 안 계시네요. 담배 피우러 가셨나? 지금이라도 얼른 오시라고 연락해볼까요?” “그럴 필요 없어요. 안 차장은 이미 만났습니다. 우리가 회의하는 동안 짐을 챙겨서 옆 건물로 옮겨갈 겁니다. YG코퍼레이션 사업전략팀으로 이동할 거예요.” 잠시 멍하니 있던 팀원들이 이제는 무언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두호 그 인간이!” 유희아 대리는 아까부터 좌불안석이 되어 배 팀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편견과 위안

 

배 팀장이 윤 부장을 불렀다. “윤 부장께서 유 대리가 자신감을 되찾고 자기 몫을 다할 수 있도록 코칭을 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일종의 멘토링이랄까요?” “거꾸로 제가 팀장님께 부탁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유 대리의 멘토가 되어주세요. 팀장님의 경륜과 조직 전반에 대한 안목으로 유 대리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해주시면 좋겠어요. 부탁드릴게요.” 며칠 뒤 저녁시간, 유 대리는 배 팀장과 함께 회사 인근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음식을 주문하고 나오기까지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 듭시다. 배가 많이 고프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유 대리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더니 이내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팀장님, 오늘 보자고 하신 이유, 잘 알아요. 죄송해요.” “유 대리, 잘못했다는 말은 상처받은 사람, 억울하게 당한 약자가 할 게 아니에요. 잘못한 사람이 해야 하는 거예요. 난 유 대리가 이번 일로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해요. 안 차장한테 당한 약한 사람일 수는 있어도, 잘못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또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잘못한 사람의 책임을 묻고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팀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결전의 날

 

지금부터 정기 이사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아 부회장의 개회사에 이어 YG코퍼레이션의 법무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최태훈 전무가 안건들을 읽어 내려갔다. “…… 마지막 4호 안건은3대 주요 사업본부로의 조직 개편 및 임원 인사 건입니다.” 자유토론이 시작되자 조세호 사장이 격한 말들을 쏟아내며 험악한 분위기로 몰아갔다. 그 칼끝이 조선아 부회장을 향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봐 마 부장, 내가 말한 자료를 화면에 띄우고 설명 좀 해봐.”

마태호 부장은 안 차장에게 준비한 자료를 스크린에 띄우게 하고는 조목조목 반박했다. 조 사장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의 분란을 포함하여 취임 직후부터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켜온 조선아 대표이사 부회장의 퇴진과 개발기획팀을 비롯해 불필요한 조직들의 통쾌함을 제안하며, 비상 안건으로 표결 상정을 요청합니다.” 조 부회장은 지긋이 눈을 감았고, 배 팀장은 당황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표결로 간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상황을 반전시킬 한 방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잠시만요!” 최 전무가 표결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할 때 노트북을 조작하고 있던 유희아 대리가 손을 들었다. “아까 마태호 부장님께서 발표하신 자료 말인데요, 수치가 잘못돼 있어요.” 갑작스러운 유 대리의 지적에 마 부장이 되받아쳤다. “아니,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대리 나부랭이가 맞니 틀리니 나서는 거야!” 안 차장도 언성을 높였다. “유 대리, 자료가 틀린지 맞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유 대리도 지지 않고 안 차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안 차장, 당신이 띄운 그 자료, 내가 만든 거니까. 당신이 우리를 배신하고 나한테서 빼내간 자료잖아!”

유 대리는 자료를 종합하면서 유동적인 환율을 감안하여 매출과 영업이익에 임의의 수치를 집어넣고 이사회 개최 전날에 최종 고시 환율을 확인한 뒤 정확한 수치로 수정할 생각이었다. 안두호 차장이 가져간 자료는 수정 전 상태였던 것이다. “후배 사원을 꾀어 도둑질한 자료가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유 대리의 날 선 공격에 회의실이 술렁였다. 안 차장은 안절부절 못했고, 조세호 사장과 마태호 부장은 속으로 아차 싶었지만 태연한 척하며 수치의 오류는 큰 문제가 아니라면서 표결을 극력 주장했다. 우여곡절 끝에 표결이 이루어졌고, 결과는 조 부회장과 배 팀장이 준비한 안건의 통과였다.

이사회가 끝나고 YG코퍼레이션은 빠르게 움직였다. 한국의 YG코퍼레이션은 지주회사 역할의 ()YG로 변경되었다. 더불어 조선아 부회장이 회장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자료 유출에 대한 진상조사도 이루어졌다. 마 부장이 보고한 자료의 문제점들이 확연이 드러났다. 실적을 부풀리려고 소수점의 위치를 교모하게 바꾸거나 반올림 등을 하여 조작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그와 함께 조 사장이 직접 지시한 정황들이 속속 밝혀졌고, 회사 비용을 마음대로 유용한 증거들까지 나왔다.

결국 조 사장은 퇴임을 면하는 대신 YG코퍼레이션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 작은 자회사를 맡는 것으로 매듭지어졌다. 마태호 부장 역시 조 사장을 따라 같은 회사로 이동할 예정이라고 했다. 반면 개발기획팀에는 경사가 겹쳤다. 어려운 미션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배선태 부장은 연초에 발표된 임원 인사에서 상무로 승진하여 ()YG의 경영전략과 사업지원을 총괄하는 경영관리부문장을 맡게 되었고, 그의 뒤를 이어 윤이화 부장이 개발기획팀장으로 선임되었다. 새로 합류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와 함께 춤을

 

YG그룹 댄스동아리 발표회 장에 우윳빛깔 오지아라고 쓴 색깔종이 플래카드를 들고 옥신각신하는 표지오 과장과 오성두 대리 주변으로 개발기획팀 직원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고미정 과장과 유희아 대리는 꽃다발을 하나씩 들고 있었고, 배 상무 역시 오랜만에 옛 팀원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배선태 상무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흐뭇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외투 주머니에서 뭔가 묵직한 느낌이 전해졌다. 손을 넣어보니 녹색 목각조각이었다. 남미 출장길에서 사온 뒤로 사무실에서 한 번도 들고 나온 적이 없던 물건이었다. 이상하다 생각하며 배 상무는 주머니에서 목각조각을 꺼내 살펴보았다. “, 카르타 도 아마조네스(Carta do Amazones)에 또 무슨 편지가 쓰여 있는지 볼까? ?”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 사무실 책장의 한 곳을 지키면서 배 상무가 상념에 잠길 때마다 들여다보면 신기하게도 그때의 상황에 맞는 글귀를 보여주던 목각조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리 자세히 봐도 글자가 없었다. 갑자기 사라진 걸까, 아니면 내내 헛것을 봤던 걸까?

목각조각을 손에 든 배 상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남성이 여성을, 여성이 남성을, 우리가 우리를 바라보는 것 역시 이 목각과 같지 않을까? 원래 새겨진 것도 없고, 정해진 것도 없고, 아무런 실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바라보니까 무언가 새겨져 있는 것 같고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고 느낀 게 아닐까? 만들어진 이미지에 갇혀 허상을 마치 실체인 양 믿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래서 지금까지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굴절된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왜곡되게 바라본 건 아닐까?’ 목각조각의 표면을 다시 들여다본 배 상무는 씩 웃으며 목각조각을 도로 주머니에 넣고 아직도 흥분에 들떠 있는 개발기획팀의 남녀 팀원들에게 다가가며 외쳤다. “나의 원정대 대원들이여! 아마조네스의 전사들이여! 우리의 파티를 하러 갑시다. 우리의 파티를!”

 

HOW CAN WOMEN AND MEN BE ON ONE TEAM? - 우리는 어떻게 원팀이 될 수 있을까?

 

남직원은 사람을, 여직원은 내용을 본다

 

직장생활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회의는 직장인들이 자주 접하는 소통 방식이다. 대부분 일() 대 다() 또는 다 대 다의 형식으로 진행되어 빠른 정보 공유와 책임소재 확인 등이 수월하나, 개개인의 생각이나 감정 등을 파악하기 힘들고 그에 맞는 대응도 어렵다. 이 같은 회의의 장단점에 대해 남성과 여성이 견해 차를 보이고 마찰을 빚는 경우가 많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회의, 여자들이 좋아하는 회의: 여성 직장인들이 회의시간을 싫어하거나 어려워하는 이유는 하나가 아닐 것이다. 그중에서도 남성과 여성이 선호하는(혹은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커뮤니케이션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꼽을 수 있다. 먼저 여성들, 특히 젊은 여성들이 선호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핑퐁게임을 하듯 말과 말, 의미와 의미를 서로 주고받으며 뜻을 모으거나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반면 남성들, 그중에서도 일정 직급 이상의 남성들이 선호하는 커뮤니케이션 유형은 대체로 일방향이다.

개인별 차이가 있지만, 남성들은 대체로 물 흘러가듯진행되는 커뮤니케이션을 중요시한다. 별다른 이견 없이 빠른 시간 내에 의사가 결정되면 좋은 회의였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여성들은 다르다. ‘물이 출렁거리듯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을 선호한다. 대화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그런 분위기와 방식을 중시한다. 결론이 났어도 서둘러 끝내는 회의는 달가워하지 않는다. 회의에서 요구받는 리더의 역할도 서로 다르다. 남성들 사이에서 리더는 회의의 대미를 장식해주는 역할, 즉 논의를 마무리하고 논쟁의 마침표를 찍어주는 역할을 요구받는다. 반면 여성들은 리더가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중간에 끊어지거나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배려해주기를 바란다.

 

창의적인 조직을 만든 이것: 어떻게 하면 좋을까? 뻔한 절충안 같지만, ‘여자의 회의남자의 회의그 중간 어딘가에 남녀가 함께 할 수 있는 회의가 있다. 이를테면 남성들이 강점을 보이는(혹은 강점이라 생각하는) 형식을 만들어 시간을 관리하는 등의 역할은 남성에게 맡기고, 여성들의 강점을 살려 이야기의 맥락을 잡아주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쏟아내도록 하는 등의 역할은 여성에게 맡기면 어떨까? 그 시작은 먼저 인정하기. 대화라는 도구는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더 능숙하게 다룰 줄 안다. 이를 인정하고 회의의 주도권을 여성이 쥐게 한다면 회의의 결과물은 훨씬 더 풍부해질 수 있다.

오빠는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

 

공감하려는 여자, 통제하는 남자: H그룹의 연수원에 강의하러 갔다가 겪은 일이다. 점심식사를 마친 연수생과 교육 진행자, 강사들이 커피를 손에 들고 로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한 30대 남성이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스마트폰을 조작하며 걷다가 컵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반들반들한 화강암 바닥 위로 커피를 쏟아버리고 말았다.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사고를 친(?) 당사자보다 그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먼저 50대 남성: , , , 봐라. 길 가면서 전화기 들여다보더라니! 곧이어 40대 남성: 어벙한 녀석. 내 그럴 줄 알았다. 저걸 다 언제 닦냐? 이어서 30대 남성: 어이쿠! 대형 민폐 등장이요. 미화원 여사님한테 걸리면 죽었다. 큭큭.’

다른 남성들의 반응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여성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그들의 반응은 굳이 연령대를 구분할 필요도 없이 하나였다. “어머, 어머, 어머, 저걸 어떻게 해!” 작은 해프닝이었지만 그들이 보인 반응에서 우리는 남녀가 문제 상황에 반응하고 해결하는 방식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남성이 문제 또는 갈등의 책임(또는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재빨리 찾아내어 제거하는 방법(위에서 보듯 소극적인 비아냥이나 비판부터 집단적 따돌림, 법적 책임 소재 규명 등)에 몰두하는 반면, 여성은 먼저 문제적 상황에 깊이 공감하여 감정적 톤을 맞춘다. 사회운동가이자 정치인인 차커우디언 박사는 갈등 해소라는 학술지에 기고한 글에서 이러한 남녀 간 차이에 대해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어떤 갈등 상황이 생기면 남녀를 불문하고 그것을 조정하려고 하는데, 세부적으로 활용하는 조정 스킬은 기존의 관념과 달리 남녀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갈등을 빚는 양측의 주장을 요약하여 다시 말해주기’, 양측의 논리를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재구성하기등이 그것이다. 분명한 차이는 그러한 스킬을 통해 남녀가 궁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에 있다.

여성은 위와 같은 스킬을 발휘하여 양측의 입장을 보다 깊이 공감하고 그들이 주장하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반면, 남성은 전반적인 해결 과정을 자신의 의지대로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기울인다. 연수원 로비에 커피가 쏟아진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해 여성들이 커피를 쏟은 당사자의 심정에 공감하며 그가 하고 싶은 말(, 이걸 어쩌지?)로 반응한 반면에 남성들이 문제의 상황을 심판하고 평가하는 태도를 보인 것에는 이와 같은 근본적 차이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여자의 감각으로 이해하고, 남자의 심장으로 해결하라: 사람은 누구나 갈등 상황이 발생하면 당황하기 마련이고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그러다 보니 갈등 그 자체보다 해결 방식에 대한 의견 차로 다투게 되고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게 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여자의 마음으로 이해하고 남자의 가슴으로 해결할 것을 권한다. 갈등 상황에 직면했다면 즉각적으로 반응하거나 당장 해결하겠다며 덤비지 말고, 인내심을 발휘하여 이해와 공감부터 해야 한다. 커피를 쏟은 상황에서 여성들이 보인 반응처럼 판단과 단정에 앞서 난처해진 사람의 심정을 대변하는 모습으로 대하면 해결의 실마리를 보다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다음에는 문제 상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정확한 판단에 필요한 단서들을 최대한 확보하여 사람들과 공유한 뒤, 남성들처럼 일정한 룰을 정해 문제 해결을 위한 신속한 방법을 찾아 실행하면 된다.

 

여성 1는 사표를 썼을까?

 

남녀관계 문제의 근본 해법: 오스트리아 출신의 영국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한계가 내가 사는 세상의 한계를 규정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여성은 저래’, ‘남성은 이래라고 단정지어 내뱉는 말이 우리의 관계를 왜곡시키고 넘어서기 힘든 한계를 설정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한때 남자와 여자가 함께 다니면 무조건 사귀는 사이로 간주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사람들은 둘을 연인관계로 몰아갔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미혼의 남녀는 물론 결혼한 남녀도 친구로 지낼 수 있다는 인식이 보편화되었다(물론 인정할 수 없다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나온 말이 남사친(남자사람친구)’, ‘여사친(여자사람친구)’이다. 애인이 아니면서 친하게 지내는 이성을 부르는 말이다(남녀 구분 없이 그냥 친구라고 부를 날도 머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바로 이 남사친, 여사친에 우리가 풀고자 하는 문제의 답이 들어 있다. 상대가 남자이건 여자이건 상관없이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면 되는 것이다. 사람을 남녀로 갈라서 다르게 대하려는 것에서부터 남녀관계의 문제가 파생된다고 볼 수 있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으로 부르고 대하면 될 일이다. 일도 마찬가지다.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을 따로 구분하지 말고 모두가 사람이 하는 일, 우리가 하는 일로 바라보고 협업의 파트너로 여기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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