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한우덕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중국 경제 전문가이다. 1989년 한국외국어대학 중
국어과를 졸업했다. 그 후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정치부, 정보통신부를 거쳐 1999년부터 2006년까지
베이징과 상하이 특파원으로 근무했다. 상하이 화동사범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에서 두 눈 부릅뜨고 한국이 중국과 함께 살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지은 책으
로 『중국의 13억 경제학』, 『세계 경제의 슈퍼엔진 중국』, 『상하이 리포트』, 『뉴차이나, 그들
의 속도로 가라』, 『경제특파원의 신중국견문록』 등이 있다.
▣ Short Summary
‘중국, 우리 경제에 축복인가? 재앙인가?’ 중국은 우리 수출의 약 32%(홍콩 포함)를 받아주는 최대
시장이다(2017년 기준). 2, 3, 4, 5위인 미국, 베트남, 일본, 호주를 합친 것보다 많다. 외형으로 보
면 분명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산업 내부로 들어가 보면 ‘중국 때문에 안 돼’라는 분위기가
점점 확산되고 있다. 중국 정부의 고의적인 한국 때리기에 실망하고, 그들의 기술 추격에 쫓기고, 중
국 소비자에게 외면당해 보따리를 싸는 기업도 많다. 그렇게 중국은 축복과 재앙의 두 얼굴로 우리
앞에 서 있다.
중국과 수교한 게 1992년 8월이다. 이후 중국은 우리 경제에 축복 같은 존재였다. 많은 한국 기업들
이 중국으로 공장을 옮겼고, 우리의 기술과 자본이 중국 시장에서 꽃을 피웠다. 한국에서 부품을 만
들어 중국에 수출하고, 중국에 진출한 공장에서 조립해 미국 등에 수출하는 모델이 자리 잡았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도 중국에서 힘을 얻었기에 가
능했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은 우리에게 마냥 축복만 주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재앙을 안겨주는
존재로 변하고 있다. ‘사드 사태’는 그 극단이었다. 지금 중국에서 한국 브랜드는 잊혀지는 중이다.
많은 이들이 중국의 민낯에 실망하고, 중국을 비난하고, 중국으로부터 돌아서고 있다. 상처는 깊다.
우리 기업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 시장에서 밀려나고 있었다. 특별히 못해서가 아니다. 중국 기업
들의 추격이 너무 빨라서였다. 한때 중국 스마트폰시장의 20%를 점유했던 삼성폰이 10분의 1 수준
으로 추락했다. 현대자동차의 시장점유율도 반토막이 났다. 중국 기업과 브랜드의 약진 때문이다. 가
전과 기계 등은 추월당한 지 오래고 철강, 조선, 화공 심지어 자동차도 위험하다. 그동안 우리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중국이 경쟁 상대, 아니 위협의 존재로 돌변했다.
우리가 그동안 중국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건 기술이 앞섰기 때문이다. 기술이 있으니 중국
기업들이 합작하자고 달려들고, 중국에 가면 대접도 받았다. 기술이 뒤처진 한국 기업에 손을 내밀
중국 기업은 없을 것이다. 핵심은 기술이다. 기술만이 중국의 정치ㆍ경제적 리스크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기술에 지면 단지 거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심리적 투항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정
치ㆍ외교적인 예속도 따지고 보면 기술에서 시작된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국 서플라이체인의 맥을
잡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중국 시장은 크다. 틈새도 열려 있다. 중국의 시장 변화에 한발
앞서 대응한다면 제2의 중국 붐도 기대할 수 있다. 중국 시장에서는 지금 1990년대 이후 출생자가
구매를 주도하고 있고, 전체 거래의 14%가 인터넷을 통해 이뤄질 만큼 유통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화장품, 의료제품, 생활용품 등에 대한 수요가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하고 있다. 알리바바의 마윈이 시
동을 건 중국의 인터넷 모바일혁명은 우리에게도 기회다. 그간 중국에서 우리 제품(서비스)의 가장 큰
장벽은 유통망이었다. 맵시 있는 브랜드를 인터넷에 얹어 유통한다면 해볼 만하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그동안 중국의 추격에 경계심을 갖고 스스로 채찍질을 해왔다. ‘중국에 밀리면 우
리 경제는 끝’이라는 위기의식이 우리 산업을 더 단련시킨 측면도 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중국의
경제, 산업이 많이 강해졌다고는 하나 곳곳에 틈새가 있고, 구멍이 있다. 중국 기업이 급속하게 큰 것
이 사실이지만 우리 기업 역시 많은 분야에서 탄탄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중국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면, 재앙을 걱정하기보다는 자강(自强)책 마련에 집중한다면 중국은 여전히 우리의 기회다.
▣ 차례
머리말 - 중국이라는 이웃 나라
프롤로그 1 - 심판이 공도 차는 시스템
프롤로그 2 - 중국, 축복인가 재앙인가
1부 함정 - TRAP
중국은 왜 갤럭시를 버렸나?_ 삼성폰의 중국 시장점유율이 폭락한 근본 이유
위기의 현대차, 벼랑 끝에 서다_ 현대차의 승부수는 통할 것인가?
코닥의 몰락, 과연 남의 일일까?_ 중국 비즈니스의 ‘정치 리스크’
중국 시장은 판매왕의 무덤?_ 중국식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3가지 키워드
이베이는 왜 보따리를 싸야 했나?_ 중국 기업이 해외 업체를 몰아내는 법
애플이 중국에 백기를 든 이유_ 기술과 시장의 콜라보시스템을 구축하라
클러스터라는 블랙홀_ 일자리 전쟁에서 살아남는 법
이젠 반도체 차례인가…_ 중국의 기술추격에 흔들리는 한국 산업
“카드는 안 받습니다”_ 규제가 있는 한 개구리 도약은 남의 일
한진해운이 떠난 자리, 누가 채우고 있나_ 글로벌 시장을 향한 중국 국유기업의 포석
2부 뉴노멀 - New Normal
선전(深圳)의 힘_ 실리콘밸리에 도전하는 그들의 무기 4가지
BYD는 BYD, 테슬라와 비교하지 말라!_ 중국 전기차의 도약
중국 IT 전시회에 웬 한국 구두닦이업체?_ 한국과 중국의 4차 산업혁명 진행 현황
110억짜리 자동차가 상하이로 간 까닭은?_ 중국 자동차산업의 역사와 미래
시간은 과연 미국의 편이었을까?_ ‘G2’라는 용어를 더 이상 쓰지 말아야 하는 이유
일대일로에서 우리가 먹을 ‘떡’은 있는가?_ 잔칫집 논리, 파티의 손님이어야 하는 이유
죽어라 일해 봤자 국가만 살찐다!_ 승자 독식의 경제
중국은 흔들릴 것인가?_ 중국 정치·사회·경제의 함수관계
3부 도전 - Challenge
중국, 이길 수 없다면 합류하라_ 한국 브랜드의 ‘10년 장벽’ 넘는 법
갑질했다간 큰코다친다_ 한류 비즈니스 2.0 시대
“중국 관광객, 차라리 못 오게 막아라”_ 천수답 관광을 전천후 관광으로 만드는 법
10cm의 차이_ 패션회사 가로수의 중국 시장 도전기
열린 토론, 빠른 결정, 철저한 능력주의_ 초코파이가 중국에서 장수하는 비결
짝퉁 때문에 어렵다?_ 초코파이가 중국에서 장수하는 비결
‘중국 전문가’란 어떤 사람인가_ 진정한 중국 전문가의 3가지 조건
답은 ‘SOFT CHINA’에 있다_ 중국 비즈니스의 선수 교체, 9명의 새 멤버
4부 중국의 길, 한국의 길 - Which Way China? Which Way Korea?
시진핑 경제의 미래, 10년_ 강성 권위주의가 경제를 인질로 잡다
중국은 파트너일 뿐, 친구가 될 수는 없다!_ 시진핑 신시대, 중국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
이러다 한국 외교 ‘찬밥’ 된다_ 정책 라인에 중국통이 없다
웃으면서 곡할 줄 알아야…_ 전략적 유연성, 대륙의 힘에 맞서는 길
에필로그 - 역사는 되풀이되는가?
▣ 내용요약
1부 함정 - TRAP
중국은 왜 갤럭시를 버렸나?_ 삼성폰의 중국 시장점유율이 폭락한 근본 이유
삼성 핸드폰 ‘갤럭시’는 중국 시장에서 통하는 대표적 한국 브랜드다. 1990년대 말 시작된 ‘애니콜 신
화’ 이후 줄곧 중국의 핸드폰시장을 주도해왔다. 한때 20%대 시장점유율을 자랑했다. 그러나 2018년
5월 현재, 2% 선도 지키지 못할 정도로 추락했다. 또 다른 한국의 대표 브랜드 ‘현대자동차’ 역시 흔
들리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 이유를 사드 배치에 따른 갈등 때문만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중국 베이징의 대기업 주재원 김 과장은 최근 인터넷에서 선글라스를 하나 샀다. 그런데 물건을 알리
바바의 타오바오도, 징둥의 JD닷컴도 아닌 샤오미의 전자상거래사이트 ‘유핀’에서 주문했다. 샤오미는
2017년부터 전자상거래사이트를 오픈해 운영 중이다. 선글라스 가격은 199위안, 우리 돈으로 약 3만
8,000원이다.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아무리 싸게 사더라도 아마 5만 원은 넘을 겁니다. 디자인과 품
질도 마음에 듭니다. 요즘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터넷쇼핑사이트 중 하나가 바로
유핀입니다.” 유핀은 샤오미 생태계의 터전이다. 샤오미가 직접 만든 제품은 물론 투자 또는 브랜드
제휴로 연결된 기업의 상품 등이 그 밭에서 자라고 있다. 김 과장은 “유핀에서는 알리바바의 타오바
오와 달리 샤오미가 제품 선별을 해주니 믿고 살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샤오미는 어떤 기준으로 제품을 선정하며, 투자 또는 브랜드 제휴는 무슨 잣대로 맺는 걸
까? 답은 하나다. 바로 가성비다. 가격은 비싸지 않으면서 품질이 좋고 디자인이 예쁜 제품만을 골라
유핀에 올려놓는다. 그게 샤오미의 일관된 경영 원칙이다. 김 과장이 산 선글라스도 한국 대구에서
만든 것이었다. 그렇게 샤오미는 가성비 높은 제품을 찾아 나선다. 샤오미가 중국의 소비 패턴을 브
랜드 중심에서 가성비 위주로 바꾼 것인지, 아니면 가성비를 중시하는 중국의 소비 흐름에 잘 적응한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중국에서 젊은 소비세대의 등장과 함께 ‘브랜드 맹신주
의’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때 중국인들은 외국 브랜드라면 사족을 못 쓰는 모습을 보였다. 외국의 명품 상점 앞은 장사진이
연출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옛날이야기다. 중국 소비자들이 해외 브랜드라고 무턱대고 좋아하던 그런
시기는 지났다는 얘기다. 실제 시장점유율을 보면 해외 브랜드가 로컬 브랜드에 점점 밀리는 양상이
다. 화장품협회가 서울 여의도에서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황민자 중국 쑤저우페이아이 부사장은
“젊은 세대, 특히 90년대 이후 출생한 세대가 소비시장의 주류로 등장하면서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
패턴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고 말한다. “해외 유명 브랜드라고 콧대 세우다가는 중국 시장에서 쪽
박 차기 십상”이라는 설명이다.
중국 소비시장은 지난 수년 동안 혁명적 변화를 겪어왔다. 지금은 단순한 개방식 전자상거래를 넘어
제조와 유통이 묶이는 방식의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 샤오미의 유핀 등이 대표적이다. 이 생태계에
끼어들 수 있느냐에 따라 중국 시장 진입 여부가 결정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저변의 큰 흐름이 바로 가성비 중심의 소비 패턴이었던 것이다. 중국 소
비자들은 이제 로컬 브랜드냐, 해외 브랜드냐를 따지기보다 얼마냐 실속 있느냐를 더 강조한다. “삼
성 핸드폰은 사드 갈등이나 노트7 발화 사태와 같은 악재가 발생하기 이전에도 이미 중국 시장에서
로컬 폰에 강한 압박을 받는 처지였습니다. 중국 소비자들이 가성비에 눈을 뜨면서 중저가 폰이 약진
했고, 그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뒤처지기 시작한 겁니다. 현대자동차의 부진 이유도 마찬가지입
니다. ‘품질은 10% 정도 차이 나지만 값은 30%나 비싼데, 누가 현대차를 사냐?’라는 인식이 시장에
널리 퍼지고 있었습니다.”(황민자 부사장)
중국인들은 삼성폰의 추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중국의 뉴스전문 사이트인 ‘오늘의 헤드
라인’에 올라온 분석 글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준다. 정용환 차이나랩 기자가 <중국인들이 삼성폰에
던지는 쓴소리>라는 제목으로 소개한 그들의 ‘쓴소리’는 이렇다.
첫째, 중국산 스마트폰의 경쟁력이 로켓 상승했다. 화웨이 등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기술 격차를
좁혔고, 판매량을 늘려나갔다. 이들 ‘메이드 인 차이나폰’이 잠식한 시장이 바로 삼성폰 영역이었다.
화웨이는 삼성의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빠르게 파고들어 대체해나갔다. 친숙한 자국 브랜드의 약진으
로 삼성 브랜드는 중국 소비자들의 뇌리에서 차츰 잊혔다.
둘째, 현지 맞춤형 제품을 공급하지 못했다. 삼성폰의 중문 OS는 최적화되지 못했다. 또한 삼성폰의
시스템 기능과 편의성은 중국인들의 사용 습관에 맞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2016년 갤럭시 S7이
나오면서 개선되기 시작했지만, 이미 늦었다. 오포(Oppo)는 이미 매장 영업에 대한 장악력을 높였고,
잠재적 소비자들의 요구를 발굴하며 타켓 마케팅을 벌이기 시작했다. 삼성은 이 점에서 취약점을 노
출했다.
셋째, AI 시대에 낙후됐다. 애플이나 화웨이는 적극적으로 AI 시대에 뛰어들고 있다. 마이크로칩이나
애플리케이션, AI 생태계 등 다방면에서 역점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삼성은 적극적이
지 않은 부류에 속한다. 삼성은 AI 전용 마이크로칩 개발이나 AI 앱 생태계 조성에 치밀하지 못하다.
넷째, 위기 대처에 허점을 보였다. 2016년 8월 노트7의 배터리 폭발 사고로 유럽 시장에선 모든 제
품의 리콜을 단행했다. 이어 9월 2일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리콜을 실시했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
ㆍ호주 등 10개 국가와 지역에서 250만 개의 스마트폰이 수거됐다. 그런데 중국은 빠졌다. 이후 중
국에서도 연이어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중국 소비자는 불만을 터뜨렸고, 삼성은 중국 시장의 마지막
지푸라기마저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쓴소리’가 다 맞는 건 아닐 수 있다. 다만 중국 소비자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게 중요
할 뿐이다. 시장을 되찾기 위해서는 그들이 갤럭시를 버린 이유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갤럭시의
추락은 단순히 삼성폰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국 대표 브랜드가 중국에서 외면당하고 있다는 것은 곧
‘한국’이라는 브랜드가 중국 시장에서 잊히고 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위기의 현대차, 벼랑 끝에 서다_ 현대차의 승부수는 통할 것인가?
‘2017 상하이 모터쇼’에서 현대자동차 부스를 찾았다. 2002년 베이징에 진출했던 현대차는 중국 내
우리나라 제조업의 자존심이다. 그 위상을 확인하고 싶었다. 현장에서 만난 현대차 관계자는 “중국
소비자를 겨냥한 맞춤형 SUV차량 ‘신이다이 ix35’가 핵심 전략무기”라고 말했다. SUV차량이 중국 전
체 승용차 판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년여 전까지만 해도 20% 이내였지만 지금은 약 40%를 차지
한다. 중국의 자동차 회사들이 SUV에 주력하는 건 당연한 일, 현대차 역시 그 흐름에 뛰어든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현대차는 SUV로 빠르게 전환되는 시장 흐름에 뒤처졌다. 2016년 중국에서는
2,437만 대의 자동차가 팔려 역대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다. 주목할 건 2016년 일반 승용차의 판매량
은 전년 대비 3% 증가하는 데 그친 반면 SUV는 45%나 급증했다는 점이다. 그해 중국에서 가장 많
이 팔린 자동차 10종 가운데 4종이 SUV였다. SUV시장의 판도가 전체 자동차시장의 판도를 결정했
고, 중국 로컬 브랜드가 주도했다. 판매 상위 SUV 10종 중에서 현지 브랜드가 6개나 됐다. 그러나
한국차는 없었다. 현대차가 로컬 브랜드에도 밀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서 충격이었다. 사드
사태 이전에 벌어졌던 일이다. 시장의 흐름에 빠르게 대응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현대차가 SUV 시장에 나온 건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시장은 아직 덤덤하다. 상하이에
서 자동차딜러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펑 선생은 “현대차는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 가운데 독일, 일본
다음의 저가 브랜드로 인식돼 중국 현지 브랜드 업체의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현대차
가 중국 전략용 SUV를 출시해도 저가 브랜드 이미지를 탈피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중국
소비자들의 선택 폭이 계속해서 넓어지는 상황에서 한두 개 신모델로는 한국차의 강점을 보여주기 어
렵다. 현재 중국 현지 메이커들은 매년 70여 종 이상의 신차를 쏟아내고 있다. 이 상황에서 BMW와
벤츠, 토요타 등 외국 브랜드의 판매량은 10~20%의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는 가성비로 현
지 브랜드를 압도하든가, 고급 브랜드의 외국차로 자리매김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사드의 충격은 컸다. 판매량이 반토막 수준으로 급감했다. 중국 진출 15년여 만에 최대 위기라는 말
이 나왔다. 토요타도 그랬다. 2012년 센카쿠 사태로 큰 타격을 받았다. 당시 잃었던 시장점유율을 회
복하는 데 2년여가 걸렸다. 현대도 토요타의 길을 걸을 것인가? “현대의 가장 큰 문제는 어정쩡하다
는 겁니다. 값도 품질도 애매합니다. 중국 로컬업체들이 약진하면서 더 싼 값에 그 정도 기술의 자동
차를 만드는 회사가 많아졌습니다. 아래로는 로컬업체의 가격에 받치고, 위로는 선진업체의 기술과
브랜드 파워에 치이는 샌드위치 신세입니다.” 국내 한 증권사의 상하이지사에서 일하는 증권맨이 전
하는 이야기다. 현대차는 급성장하고 있는 로컬업체와 싸워야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사드는 그
흐름을 가속화했을 뿐이다. 지금과 같은 어정쩡한 기술과 가격으로는 로컬업체의 추격을 따돌리기 어
려워 보인다. 그러기에 “토요타는 2년 만에 중국 시장에서의 실지를 회복했지만, 현대는 5년, 아니
영원히 2류 자동차 브랜드로 전락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젠 반도체 차례인가…_ 중국의 기술 추격에 흔들리는 한국 산업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대략 3년 반 근무했던 필자의 상하이 특파원 시절 얘기다. 당시 중국 기업을
취재할 때 그들에게서 자주 듣던 얘기가 있다. “한 기자, 혹시 한국 조선업체 잘 아는 곳 있습니까?
소개해주십시오. 기자재업체라도 좋습니다. 어떤 거래든 성사되면 3% 커미션을 줄 수 있습니다.” 상
하이에서도, 닝보에서도, 롄윈강에서도 같은 제안을 들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만나는 사람마다
조선, 조선 할까?’ 궁금했다. 태동은 2001년 말 중국의 WTO 가입이었다. 시장 개방 효과로 중국의
무역량이 급격히 늘었다. 브라질에서 철광석을 들여와야 했고, 미국으로 신발을 수출해야 했다. 배가
필요했다. ‘배를 잡아라!’ 해운업계는 선박이 없어 아우성이었다. 당연히 선박 발주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세상에서 배를 가장 빠르고 튼튼하게 그리고 가볍게 만드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었다. 배 주문이
쏟아지면서 국내 조선업계는 즐거운 비명이 넘쳐났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빅
3는 대규모 시설 확장에 나섰다. 부품 기자재업체들도 완성 배를 만들겠다며 독(dock) 건설에 가담했
다. STX라는 조선업계의 새로운 스타가 찬란한 빛을 발한 것도 그때쯤이다. 정부도 거들었다. 마음껏
지어라! 은행은 돈을 풀었다. 그렇게 우리 조선업계는 수주 풍년에 취해 있었다. 필자가 상하이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바로 그때였다. 중국인들로부터 ‘3% 커미션 줄 테니 한국 조선업체를 소개해달
라’는 부탁을 받던 시절 말이다. 그러나 그건 파국의 전조였다.
2000년대 중반 중국은 자국이 만든 물동량은 자국 선박이 운송한다는 ‘국조국수’ 정책을 시행했다.
‘선박 국산화’인 셈이다. 대규모 조선산업 육성 방안이 발표됐다. 정부는 국유은행을 통해 돈을 풀었
고, 국유기업은 동해안에 독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중국 동부 연안의 주요 도시에 비 온 뒤 죽순 돋
아나듯 조선 관련 업체가 생겼다. 우리가 ‘남해안에 조선 벨트가 형성되고 있다’며 흥분하던 바로 그
시간, 중국에서도 ‘동해안 조선 벨트’가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의 ‘국조국수 공정’은 우리보
다 훨씬 치열했다. 국유기업을 중심으로 선단을 꾸리더니 확장 작업에 나섰다. 민영 조선소도 끼어들
었다. 기술이 필요했다. 한국 조선업체와의 협력이 절실했다. 3% 커미션 제안은 그렇게 나왔다. 서해
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두 나라가 ‘배 만들기 경쟁’을 벌인 셈이다.
호황이 있으면 불황이 있는 법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시장은 싸늘하게 식었다. 밀려
들던 주문은 사라지고, 새로 만든 독은 애물단지로 변했다. 중국 조선업계도 힘들었다. 그러나 그들에
게는 국가(국유은행)라는 막강한 후원자가 있었다. 민영 조선소 몇 개가 넘어졌을 뿐, 국유 조선회사
는 국가의 자금 지원을 등에 업고 수주량을 늘려나갔다. 그러나 한국은 달랐다. 모든 부담을 고스란
히 업체가 떠안아야 한다. C&중공업이 쓰러졌고, 한진중공업, STX 등이 가혹한 구조조정에 시달려야
했다. 기자재업체의 줄도산이 이어졌다. 이제는 현대ㆍ대우ㆍ삼성 등 빅3마저 위험하단다.
2012년 우리는 결국 중국에 수주량 1위 자리를 내줘야 했다. 물론 기술 경쟁력으로 치면 우리가 중
국에 비해 아직은 한참 위일 수 있다. 중국도 덤핑 수주가 문제가 돼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이 한국의 ‘조선업 파국’에 정당성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잘못된 선택이 파국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중국을 봐야 했다. 중국과 물량 경쟁을 벌인다면 우리는 반드시 패한다. 모든 분야가 다 그
렇다. 조선업계 역시 중국과 ‘묻지마 투자’ 게임에 나설 게 아니라, 완성 배 업체와 기자재회사 간 공
급사슬을 정비하는 등 내부 경쟁력 강화에 매진했어야 했다. 기술 개발에 더 돈을 투자해야 했다. 정
부는 중국 시장 상황을 충분히 반영해 정책을 수립하고, 정보를 제공해야 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위기가 터졌다 싶으면 대책회의라는 걸 한다. 그러고는 어느 분야를 육성할지를 고
르고, 돈을 푼다. 그러나 그건 산업을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이는 길일 수도 있다. 기업은 기술 개발이
나 서비스 개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정부 돈 따먹는 재미로 일을 벌일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유로운 경쟁을 방해할 뿐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중국 산업이 어디로 가는지를 연구해서
기업에 길을 제시하는 것이 정부와 산하 연구기관이 할 일이다. 정부가 산업정책을 짤 때에도, 기업
이 경영 전략을 수립할 때에도 중국이라는 요소를 감안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재앙일 뿐이다. 급
속히 성장하는 중국의 산업 기술에 대처하는 길은 정부, 기업, 관련 단체 등이 스크럼을 짜고 똘똘
뭉치는 길뿐이다.
최근 주한 중국대사관에 나와 있는 중국 상무부 직원, CCPIT(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 사람들과 식사
를 했다. 그때 CCPIT의 한 직원이 필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한 기자, 혹시 반도체 부품업체 잘 아는
곳 있습니까? 소개해주십시오. 어떤 부품도 좋습니다. 성사되면 아마 커미션도 줄 수 있을 겁니다.”
이건 또 무슨 얘기인가? 이제 반도체 차례인가? 고통의 역사는 반복될 것인가….
2부 뉴노멀 - New Normal
선전(深圳)의 힘_ 실리콘밸리에 도전하는 그들의 무기 4가지
‘중국 판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IT 가전 전시회 ‘CES’에 참석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전하
는 말이다. 중국 기업이 전시장을 대거 차지했다는 얘기다. 주최 측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전시회에
참가한 중국 업체는 1,294개로 전체 참가 회사의 32%를 차지했다. 그런데 당시 중국 참여 업체의
52.4%가 선전에서 왔다. 결국 선전이 중국의 정보통신기술(ICT)을 주도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수
많은 기업, 창업가들이 내일의 거부를 꿈꾸며 창업 대열에 뛰어들고 있는 곳이 바로 선전이다. 그렇
다면 왜 선전인가?
선전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문용 네이버랩스 총경리는 이렇게 답한다. “선전은 최고의 하드웨어 생산
단지입니다. 그동안 축적해온 제조 역량이 ICT로 연결되고 있는 거지요. 과거 이곳에는 다른 건 다
있는데 없는 게 딱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아이디어지요. 그러니 ‘산자이’, 즉 ‘짝퉁의 도시’라는 악명
을 얻었던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이곳 선전으로 아이디어가 몰려들고 있습니다. 산자이의
본산이 ICT의 성지로 둔갑하고 있는 거지요.” 그랬다. 선전은 ‘뭔가를 만드는 도시’였다. 1979년 경제
특구로 문을 열 때부터 이웃 홍콩, 대만의 화교 공장들이 선전과 그 주변으로 대거 몰려들었다. 신발,
완구로부터 시작된 ‘다이궁(代工)’ 비즈니스는 1990년대 들어 가전, 컴퓨터로 발전했다. IT산업의 큰
흐름이 핸드폰으로 옮겨갈 때 선전은 핸드폰 메이커들로 붐볐고, 스마트폰이 폴더폰을 밀어낼 즈음에
는 스마트폰공장이 들어섰다. 그렇게 하드웨어 역량이 차곡차곡 쌓여왔던 것이다. 선전의 경쟁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산자이’에서 나왔다.
다이궁과 산자이의 도시 선전. 그 선전이 어떻게 ICT 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선전은 혁신적인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디어와 기술만 가져와라. 우리가 다 만들어주겠다.’ 아이디어를
상품으로 연결해주겠다는 거지요. 아이디어를 실현시켜줄 하드웨어 제작 여건이 마련됐기에 가능한
얘기입니다.” 정준규 코트라 선전 관장의 말이다. 실제로 선전의 크고 작은 공장들은 다양한 규모의
시제품을 만들 수 있다. 도면을 가져가면 일주일 안에 부품을 구하고, 시제품을 뚝딱 만들어 넘긴다.
홍콩과학기술대학에서 공부하던 한 중국 유학생은 뭔가 날아가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하늘에서 땅
을 관찰하고, 하늘길로 물건을 나르면 얼마나 편할까?’ 그는 지도 교수에게 우리 돈 약 3,000만 원을
빌려 창업을 하기로 했다. ‘어디로 갈까?’ 당연히 선전이다. 그가 원하는 시제품을 뚝딱 만들어줄 수
있는 곳이 바로 선전이기 때문이다. 그 업체가 바로 지금 세계 드론 시장을 장악한 DJI다.
하드웨어 역량이 갖춰졌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몰려오고 있다면 그다음에 필요한 게 뭘까? 돈이다.
창업 투자자가 선전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창업을 유도하고, 생산과 유통을 지
원하는 액셀러레이터 기업이 속속 선전으로 몰려든 것이다. 그들은 지금 아이디어와 공장을 연결하
고, 기존 공장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공급하고 있다. 선전을 선전으로 만든 또 하나의 요인이 있다. 바
로 정부다. 흔히 혁신은 민간 부문의 일로 여기기 쉽지만, 중국은 정부도 혁신 대열에 참여한다. 선전
은 정부와 민간이 짝짜꿍하면서 혁신을 이끌어간다. 선전 ICT의 상징 화웨이는 중국을 대표하는 민영
글로벌 기업이다. 그러나 이 회사가 오늘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각종 지
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정부가 정책자금을 동원해 해외시장 개척을 지원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
다.
하드웨어 기반이 있고, 아이디어가 몰리고, 그리고 돈이 모이면서 지금 선전에서는 ‘혁신의 진화’가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개입하면서 글로벌 경쟁력은 더 커지고 있다. 애초부터 청년들의 혁신
적인 아이디어로 무에서 유를 일구어낸 실리콘밸리와는 기본적으로 다른 선전의 혁신 DNA다.
3부 도전 - Challenge
10cm의 차이_ 패션회사 가로수의 중국 시장 도전기
중국의 패션시장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현지 로컬(중국)업체가 약진하면서 중국에 진출한 국내 브랜
드 역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랜드가 자금 확보를 위해 중국에서 성공한 브랜드 ‘티니위니’를 현
지 기업에 매각했다는 사실이 이를 상징한다. 카피로 일어선 로컬 브랜드에 당하고, 그들의 강력한
유통망에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의 패션, 여기가 끝인가? 상하이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승진 가로수(GAROSU) 대표에게 단도직입
적으로 물었다. “가로수는 뭐 하는 회사인가?” 그의 대답은 이랬다. “동대문에서 옷 가져다가 중국에
파는 회사입니다. 모든 비즈니스는 거기서 파생됩니다. 지금은 패션뿐만 아니라 한국의 화장품, 커피
숍 등을 중국으로 가져와 상점을 내는 플랫폼사업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2014년 3월 말 상하이에
서 시작해 이제 5년째 접어들었습니다.” 전 직장인 SK에 다닐 때 그의 별명이 ‘신사동 밤안개’였단다.
선후배들과 어울려 신사동의 패션 스트리트인 가로수길에 자주 들렀고, 그래서 회사 이름도 가로수라
고 지었다. 중국 내 한국 스타일의 본산으로 키우겠다는 뜻이다.
그의 꿈은 얼마나 이뤄졌을까? 중국 난징시의 중심 상권 신제커우. 유이광창이라는 대형 복합 쇼핑몰
이 들어서 있다. 9층짜리 건물로 한 층 면적은 압구정 현대백화점과 비슷한 규모다. 가로수는 이 쇼
핑몰의 1~4층을 통째로 임대해 쓰고 있다. 매장의 대부분은 한국 제품이 차지하고 있다. 1~2층에는
한국의 커피, 빵, 패션, 뷰티 편집숍을, 3~4층에는 한국의 의료, 잡화, 라이프스타일 매장을 입점시
켰다. 이들 대부분이 가로수가 직접 투자했거나 직영 매장으로 운영하는 브랜드들이다. “압구정 현대
백화점을 중국으로 옮기겠다.”는 그의 꿈이 하나둘 영글어가고 있다.
현재 가로수는 중국 20여 개 도시에 45개가 넘는 매장을 가지고 있다. 이들 매장을 통해 가로수는
매달 1,500개의 한국 신제품들을 고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처음에는 기존 브랜드제품을 소싱해오는
비중이 컸으나, 이제는 가로수 고유 브랜드가 90%를 차지한다. 주문 생산해 수입하는 형식이다. 현
재 가로수는 이 같은 의류 리테일과 도매사업 외에도 복합몰, F&B, 패션 아카데미, 교복, 한국 대학
창업 지원, 뷰티, 화장품사업 등에도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 모든 게 창업한 지 불과 5년여 만
에 만들어낸 결과물들이다.
경쟁력은 무엇이었을까? 의류 도매업체들은 몸집이 커지면 마진율을 높이기 위해 직접 생산에 뛰어든
다. 그러나 가로수는 이윤이 적더라도 구매 방식을 고수한다. 불확실성이 큰 중국 시장에서 최대한
재고를 안 남기는 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대신 고객 데이터와 물류시스템을 최대한 활용, 적
재적소에 물량을 공급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우리는 할인 판매율이 10%밖에 안 됩니다(기존 메
이커는 약 70~80%). 재고가 없다는 얘기지요. 이를 가능케 하는 게 바로 속도입니다. 하루하루의 판
매 상황은 모두 중국 SNS를 타고 동대문으로 보내집니다. 잘나가는 상품은 그 즉시 추가 주문됩니
다. 제작된 물건이 있으면 1주일 이내, 물건이 없으면 2주일 정도 후에 매장에 배치되어야 한다는 게
제 원칙입니다. 동대문의 속도가 있기에 가능한 얘기지요. 유통의 혁신, 속도의 혁신입니다.”
중국 패션시장은 어떻게 변해가고 있을까? 이 사장은 “고객이 똑똑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해외 브
랜드 맹신은 옛말입니다. 휴대폰으로 비교해보고, 매장에 나와 입어보고, 가장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판단해야 구입합니다. 브랜드보다는 가성비인 거지요. 그 변화에 대응해야 합니다. ‘내가 일등 브랜드
제품을 만들었으니 와서 사시오’라고 시장에 일방적으로 내놓는 상품은 이제 중국에서 안 통합니다.”
4부 중국의 길, 한국의 길 - Which Way China? Which Way Korea?
중국은 파트너일 뿐, 친구가 될 수는 없다!_ 시진핑 신시대, 중국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은 강군몽(强軍夢)으로 발전하고, 칼끝은 미국을 겨냥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
국 대통령은 ‘미국 우선’을 외치며 중국을 밀어붙이고 있다. 무역전쟁의 포문을 열었고,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에서는 군사적 긴장감이 감돈다. 미ㆍ중의 세력 대결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포지션을 잡
아야 할까? 3명의 전문가들을 통해 중국을 입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중국 중앙당교 국제전략연구
원 부원장인 가오쭈구이 교수. 가오 교수의 발언은 중국 공산당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2017년 가을에 열렸던 중국 공산당 19차 당대회가 끝난 후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가오 교수의 강연이
있었다. 강연의 핵심은 ‘미국의 세력은 지고, 중국은 떨치고 일어난다’라는 것이다. 그는 세계정세의
큰 흐름이 “미국 중심의 단극 세계에서 다극화, 블록화로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가오 교수의 논
지는 분명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는 막을 내리고 있고,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지역 강국으로 등장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한마디 더 했다. “중국은 정당한 권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이익을 건드리는 자는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는 뜻이다. 힘이 세진 중국은 그런 위협적인 모
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굴기를 보고 있는 서방 학자들의 생각은 어떨까? 미국의 싱크탱크인 허드슨연구소
산하 중국전략센터의 마이클 필스버리 소장을 만나보자. “우리가 잘못 알았다. 몸을 낮추던 중국은
그들의 세가 상대를 능가한다고 판단하면 가차 없이 힘을 과시한다. 그들은 겉으로만 평화적인 척,
상대방을 존중해주는 척했을 뿐이다. 우리는 이제 그들과 힘겨운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이는 중국
에 대한 미국의 막연한 낙관론이 중국을 키웠고, 머지않아 호되게 당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지적
이다.
시선을 아시아로 돌려보자. 중국은 이미 경제적으로 일본을 제쳤으니 승리한 게임이라고 간주할 수도
있다. 군사력으로도 역내에서 중국을 위협할 나라는 없다. 중국은 스스로를 ‘아시아의 도덕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어 한다. 중국을 중심으로 주종 질서가 형성됐던 황제 시기를 꿈꾸고 있다. 그 질서
속에서 중국에 대드는 나라가 나오면 강력하게 응징한다. 사드 사태는 그 파편일 뿐이다.
미국의 국제정치 분석가인 이언 브레머는 중국의 실력을 좀 더 냉철하게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브레
머는 2017년 11월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에 <중국 경제는 어떻게 미래의 승자가 될 것인가>라
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는 “미국과 중국 중 누가 지금의 영향력을 미래까지 이어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당신이 미국에 미래를 건다면, 그건 어리석은 일이다.”라고 답한다. ‘중국’을 선택하는 게 더
현명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브레머는 중국이 서방을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로 다음 5가지를 들었다.
첫째,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지도자를 가졌다. 시진핑이다. 그는 지난 집권 5년간 강력한 반
부패 투쟁으로 인민의 마음을 얻었다. 그는 ‘표’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헌법을 수정해 ‘종신 집권’도
할 수 있다. 미국이 가장 지지도 낮은 대통령을 갖고 있는 지금, 중국은 가장 강한 지도자를 가졌다.
둘째, 국가통제경제의 위력이다. 중국의 경제 규모는 미국의 40%에 불과하지만 국가가 원하는 대로
자원을 집중할 수 있다. 국가 프로젝트인 일대일로를 통해 60여 개 주변 국가에 각종 SOC 개발사업
을 지원한다. 미국으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셋째, 일자리 안정이다. 중국은 기술의 발달로 인한 실업이 사회를 얼마나 위험에 빠뜨리는지 잘 알
고 있고, 공공 분야 일자리 창출로 이를 극복하고자 한다. 국가통제경제시스템이기에 가능한 얘기다.
넷째, 기술을 활용한 사회 관리다. 중국은 기술 수단을 동원해 국민들의 생활을 감시할 수 있다. 서방
기업들은 빅데이터를 이윤 추구에 활용하지만, 중국 기업들은 사회신용시스템에 활용한다. 서방은 이
를 ‘빅브라더’ 사회라고 비난하지만, 중국은 사회 신용 제고를 범죄 예방의 한 수단으로 받아들인다.
다섯째, ‘중국 모델’이 다른 나라에서도 먹히고 있다는 점이다. 서방 자유민주주의가 문제를 노출하면
서 중국식 발전 모델은 아시아, 아프리카 등에서 확산되고 있다. 물론 중국 시스템에 문제가 없는 것
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중국의 국가자본주의 모델이 곧 한계에 직면할 것이라는 서방의 기
존 가정은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3인의 전문가들이 중국을 보는 시각과 입장은 각기 다르다. 그럼에도 공통되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중국이 굴기했다’는 점이다. 중국 중앙당교의 가오 교수는 중국의 굴기를 확성기처럼 반복하고 있고,
보수 성향의 중국 전문가인 필스버리는 중국의 굴기에 위협을 느끼고 반격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
다. 중국의 체제를 연구한 국제정치 전문가인 이언 브레머는 중국이 굴기할 수밖에 없는 근거를 제시
하며 중국의 미래를 낙관하고 있다.
트럼프는 ‘필스버리 방식’을 선택한 듯 보인다. ‘더 이상 중국을 놔뒀다가는 미국을 밀쳐낼 것’이라는
위기감으로 반격에 나서고 있다. 3인의 전문가는 서로 다른 메시지를 한국에 보내는 듯싶다. 가오 교
수는 ‘중화 질서로 들어오라’고 하고, 필스버리는 ‘중국 포위 전선에 합류하라’고 압박을 가한다. 이언
브레머는 좀 더 깊숙하게 중국을 연구할 것을 요구하고, 실리에 따라 길을 잡으라고 말하고 있다.
경계에 선 한국, 우리는 과연 어떤 포지션을 잡아야 하는가? “중국은 우리의 파트너다. 친구는 아니
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유명 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가 한 말이다. 그는 “강력한 한 지도자(시진
핑)가 통치하는 중국은 레닌식 독재 체제에서 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서방으로서는 중국
과의 협력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파트너가 되어야 할 이유다. 그렇다고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는 아니다. 생각이 다르고, 의식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울프는 “중국이 자국 모
델 수출에 나서면서 서방과 중국 간 체제 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견했다. 이데올로기 전쟁이다. 거
기에 ‘친구’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마틴 울프의 지적은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중국은 우리의 정치와 경제, 안보 등
의 모든 면에서 함께 협력해야 할 대상이다.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한반도 평화를 이뤄내고, 우리
기업들의 상품시장을 확보해야 한다. 일대일로도 함께하고, 녹색성장도 함께해야 한다. 주변 지역의
정세 안정이 필요한 중국 역시 우리와의 협력이 절실하다. 그럼 점에서 파트너다.
그렇다고 ‘친구 하자’고 나설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사드 사태를 지나며 중국이 분명 우리와는 다
르다는 걸 확인했다. 그들은 함께 가치를 공유하며 지내는 친구가 아닌, 그냥 쿨하게 협력해야 할 파
트너일 뿐이다. 억지로 친구하자고 달려든다면 부작용만 발생한다. 그렇다면 ‘쿨한 파트너’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뭘까?
마틴 울프의 얘기를 다시 들어보자. “서방은 2가지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첫째, 중국과 척지지 않는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어떻게 경제적ㆍ기술적 우위를 유지하느냐에 있다. 둘째, 민주주의 가치를 부활
시키고, 역동적이고 포용적인 경제시스템을 회복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결국 중국에 대한 기술 우
위를 유지할 수 있느냐, 역동적인 시장경제시스템을 회복할 수 있느냐, 정치 개혁을 단행할 수 있느
냐 등에 서방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얘기다. 우리에게 던지는 충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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