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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확신과 불신(이현복 지음)

by 미건주 2020. 7. 16.

확신과 불신 이현복 지음 파라북스 / 2018년 7월 / 384쪽 / 17,000원

저자 이현복

 

고양 일산에서 나고 자랐다. 한양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다. 경북대학교, 괴팅엔 대학교, 인스부르크 대학교에서 철학 공부를 했다. 독일 훔볼트재단 초청으로 괴팅엔 대학교 철학과 객원교수로 있었다. 인간 본성에 관한 철학 이야기를 공동집필했고, 방법서설을 옮겼다.

 

Short Summary

 

소크라테스가 없는 서양철학은 없다. 아테네의 등에를 자처했던 소크라테스는 세속적인 탐욕을 절제하고 영혼을 성찰하는 삶을 살라고 권했다. 거짓이 아니라 진실된 삶을 살라고 훈계했다. 부끄러운 삶이 아니라 당당한 삶을 살라고 타일렀다. 그는 그런 삶이 좋은 삶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삶의 방식에 대해 다른 확신을 갖고 있던 아테네는 소크라테스를 불신했고, 이 불신은 끝없는 소문으로 아테네 전역을 유령처럼 맴돌았다. 결국 그는 재판정에 섰고, 소크라테스는 단호하게 변론하면서, 자신은 거짓소문의 희생자일 뿐이며, 그리고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삶이 좋은 것인지를 설파한다.

이 책은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이해하기 위한 안내서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먼저 소크라테스의 변론전문을 새로 번역하여 소개하고, 당시 재판 순서에 맞추어 장을 나눈다. 그런 다음 핵심 텍스트들을 추려내어 그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곁들여 설명한다.

저자는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배심원을, 아니 아테네인을 향해서 행한 변론을 특정한 관점으로 접근한다. 바로 이 책의 제목인 확신과 불신이다.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재판을 아테네와 소크라테스 간의 불신이 충돌하는 장으로 바라본다. 즉 생각이 거듭되면 의견이 되고, 유사 의견이 반복되면 믿음이 되며, 또 반복된 믿음은 확신이 되며, 그리고 자기 확신이 깊어질수록 상대 불신도 깊어진다는 입장에서, 아테네와 소크라테스가 서로에 대해 가진 불신의 늪은 바로 자신이 자신에 대해 갖는 확신에 비례한다고 지적하며, 확신과 불신이 시대상황 및 시대정신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차례

 

머리말

 

프롤로그 - 불신과 확신

 

1부 소크라테스의 변론

01. 변론

02. 형량제의

03. 최후진술

 

2부 변론의 이해

01. 모두 변론

02. 처음 고발인

보이지 않는 고발인

고발 내용

첫 번째 가상질문 : 일 그리고 비방

신탁과 지혜

캐물음과 신의 사명

03. 나중 고발인

고소 내용과 피고 신문

청년타락 죄

불경죄

04. 죽음, 철학 그리고 신의 음성

두 번째 가상질문 : 죽음 그리고 부끄러움

죽음의 두려움

세 번째 가상질문 : 지혜사랑 그리고 조건부 무죄방면

등에

네 번째 가상질문 : 정치참여 그리고 신의 음성

동정연출

05. 유죄판결 후 형량제의

소크라테스의 형량제의

다섯 번째 가상질문 : 캐묻는 삶 그리고 최고선

은화 1므나 벌금형

06. 사형선고 후 최후진술

사형 쪽 배심원에게

뻔뻔함과 몰염치

예언

친구 재판관에게

마지막 당부

 

에필로그 - 안티고네와 소크라테스

 

내용요약

 

모두 변론 (변론의 첫말과 끝말)

 

기원전 3995월 어느 늦은 봄날, 불경죄와 청년타락 죄로 고소된 칠순의 소크라테스, 자타가 말의 대가로 인정한 그가 아테네 한 법정에서 행한 변론의 첫말과 끝말(아래 원문 참조)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말의 의도와 특징이 무엇보다 그 시작과 마무리에서 명확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테네인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내 고소인들로 인해 어떤 상태에 있게 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이 말했을 때 내 자신을 거의 잊어버릴 정도였습니다. 그들의 말은 그토록 나에게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말이지 그들은 진실이라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중략이제 나는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죽으로 가고, 여러분은 살러 갑니다. 우리 중에 누가 더 좋을지는 신 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소크라테스가 변론 첫마디로 내뱉은 말은 아테네인 여러분이었다. 그리고 그는 변론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은 살러 갑니다. 우리 중에 누가 더 좋을지는 신 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처음 말도 마지막 말도 일상적인 법정의 언어나 정상적인 변론의 어투가 아니었다. 소크라테스는 비일상적인 언어로 변론의 문을 열었고, 그에겐 애당초 죽음의 두려움이 없었다. 죽음의 두려움이 없는 그에게 그 어떤 것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통상적인 변론은 차라리 구차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언어와 자신의 방식으로 변론을 구사했다. 그의 변론은 재판관을 상대로 자신의 처지를 변명하고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는 법정의 상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조국 아테네와 동포 시민을 상대로 칠십 평생 살아온 자기 삶에 관한 일장 연설이었다. 나아가 그의 말대로, 자신을 위한 변론이 아니라 아테네 시민을 위한 변론이었다. 그래서 변론 첫마디로 존경하는 배심원 여러분이 아니라 아테네인 여러분을 불렀을 것이다.

 

처음 고발인

 

보이지 않는 고발인: 아테네인 여러분, 나는 먼저 나에 대한 처음의 거짓된 고발과 처음 고발인을 상대로, 그 다음에 나중 고소와 나중 고소인을 상대로 변론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를 고발한 사람들이 여러분 곁에 많이 있는데, 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여러 해 동안 진실이 아닌 것만 여러분에게 늘어놓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들이 아니토스와 그 무리들보다 더 두렵습니다. 물론 이들도 심각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들이 더 심각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전략은 치밀했다. 그는 유창한 언변으로 거짓말만 늘어놓으며 고소했다는 법정 고소인을 바로 상대하지 않았다. 지금의 법정 고소인을 그저 허수아비로 간주했다. 그 배후에 몸체가 있다고 믿었고, 이를 상대로 먼저 변론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먼저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이중의 고발인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처음 고발인, 즉 오래 전에 고발을 한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나중 고발인, 즉 지금 이 고소를 한 사람들이다. 현재와 과거라는 시간의 관점에서 고발인을 구분했다. 그리고 과거가 없었다면 현재는 없었을 것이라는, 현재는 과거의 우연적인 산물일 뿐이라는 의미에서, 현재 고발인을 과거 고발인의 대리인으로 여겼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소크라테스는 현재 고발인을 아니토스와 그 무리들이라 칭하며, 고발인 3인 가운데 아니토스를 대표 인물로 거명했다.

 

고발 내용: 나를 비방한 자들은 도대체 무슨 말로 그렇게 했을까요? 나는 그들이 고발인들인 것처럼 그들의 선서진술서를 읽어보겠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죄를 범하고 주제 넘는 짓을 하고 있다. 그는 땅 밑의 것과 하늘의 것을 탐구하고, 더 못한 주장을 더 나은 주장으로 만들며, 그런 것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친다.”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처음 고발에서 아테네인의 편견을 주목했다. 부당한 편견이 있는 한 자신이 어떤 말로 변론하더라도 설득력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나중 고발에 대한 정식 변론을 행하기 전에, 아테네인의 가슴 깊이 새겨져 있는 선입견의 정체가 무엇이고, 비방의 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악 소문으로 자리 잡았는지를 보여주려 했다. 턱없이 부족한 시간으로 바로 잡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자신에 대한 선입견이 공정한 견해가 아니라 편견임을 배심원에게 강조하려 했다.

그는 또한 나중 고발이 처음 고발의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것을, 따라서 아니토스와 그 무리들의 고소는 그저 편견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나중 고발에 대한 변론에 유효한 발판을 마련하려 했다. 나아가 처음 고발에 대한 본격적인 변론을 시작하기 전에 법에 대한 복종과 신에 대한 순종을 변론에 임하는 태도와 연결시킴으로써 아테네인이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불법과 불경의 의혹을 조금이라고 잠재우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사전 정지작업을 통해 자신이 아테네인이 선-판단(-判斷)하는 것과 같은 사람이 아님을 보여주려 했다.

첫 번째 가상질문 - 일 그리고 비방: 어쩌면 여러분 중에 반박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 당신이 하는 일이 무엇이오? 당신에 대한 그런 비방이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이오? 당신이 남다른 특이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오? 그럼 어떻게 그런 평판과 소문이 생길 수 있겠소? 우리가 당신을 경솔하게 판단하지 않도록 당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말해주시오.” 이것은 정당한 요구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그런 명성과 비방이 나에게 생기게 되었는지 보여주려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처음 고발인의 선서진술서에 들어 있는 죄목을 모두 부인했다. 배심원이 어떻게 받아들였든, 자신이 자연철학자도 소피스트도 아님을 나름대로 증명했다. 그럼에도 그 자신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남아 있었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테네인의 의혹은 당연한 것이었다. 소크라테스가 자연철학자도 아니고 소피스트도 아니라면, 그래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자도 아니고 나쁜 주장을 좋은 주장으로 만드는 궤변론자도 아니라면, 그에 대한 세간의 비방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이냐는 의문이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나는 아니다가 아니라 나는 이다라는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서 그에 응답한다.

그는 앞서 배심원에게 사전 양해를 구한 것을 적극 활용했다. 그것은 법정 어법이 아니라 자신에게 익숙한 평소 어법이었다. 아고라에서 기존의 지식 체계를 해체하고 새로운 지식을 모색할 때 사용한 대화방식, 문답법이었다. 이제 그는 비방의 원인을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묻고 답하는 문답법을 활용한다. 문답에서 소크라테스는 답변자였다. 변론의 특성상 질문자를 구할 수 없었던 소크라테스는 가상의 인물을 질문자로 내세웠다. 가상의 인물이 질문하면 그가 답하는 형식이었다. 이것은 자신에게 익숙한 것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배심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변론에서 이런 문답법을 대략 다섯 번 사용한다. 소크라테스가 던진 첫 번째 가상질문은 하는 일비방의 원인의 관계를 묻는 것이었다. 아테네에 퍼져 있는 비방의 목소리가 소크라테스의 주장대로 모두 사실이 아닌 것에서 비롯되었다면, 그 비방의 소문이 왜 생기게 되었는지를 묻고 답하겠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테네에서 한갓 범부가 아니라 명성을 지닌 유명인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아테네인은 그가 자연철학자나 소피스트라고 들어 알고 있지만, 그는 다른 이유를 제시했다. 다름 아니라 자신이 지혜롭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이어 자신의 지혜가 인간적인 것이라 했다. 그 는 자연철학자나 소피스트의 것은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는 초인간적인지혜라 부르면서 인간적인 지혜와 초인간적인 지혜를 대비했다. 배심원은 이 말의 의미가 궁금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수 없었거나 풀어주지 않았다.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는 지혜의 의미를 더 자세히 보여줄 말들이 자신에게 없다고만 했다. 자신은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만 했다. 소크라테스는 초인간적인 지혜에 대한 자신의 무지를 강조했다. 이는 곧 그것을 갖고 있지 않다 는 것, 그래서 자신은 자연철학자나 소피스트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이것을 기 회로 처음 고발이 무고임을 지적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그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나를 비방하려는 거짓말입니다.”

 

나중 고발인

 

고소 내용과 피고 신문: 이제 나는 선하고 나라를 사랑한다는 멜레토스에게 그리고 나중 고발인에게 변론하겠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다른 고발인인 것처럼, 그들의 선서진술서를 다시 검토해봅시다. 그것 은 대충 이러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나라가 인정한 신들이 아니라 다른 새로운 영적인 것들을 믿음으로써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전략적으로 자신에 대한 고발을 시간적인 전후에 따라 그리고 논리적인 전후에 따라 처 음 고발과 나중 고발로 구분했다. 나아가 나중 고발에 대한 변론 또한 둘로 나눴다. 그는 먼저 멜레토스에게, 다음에 다른 고소인들에게 변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멜레토스에 게만 가장 먼저 길게 변론한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아마 소크라테스는 멜레토스가 본 고소에서 형식 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가장 앞장선 인물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청년타락 죄: 그들을 보다 훌륭하게 만드는 자가 누구인지 이분들에게 알려주시오. 멜레토스여, 그대가 보다시피, 그대는 침묵하고, 말할 것을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군요. 이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그대는 그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내 주장에 대한 충분한 증거라고 생각하지 않소? 어쨌거나 말해보시오, 누가 그들을 더 좋게 만들지요? “법률입니다.”

문답의 출발점은 아이러니였다. “멜레토스, 말해보시오. 젊은이들이 최대한 훌륭해지는 것이 그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겠소?” 이에 대한 멜레토스의 답은 당연히 그렇습니다.”였다. 그런 다음 소크라테스는 누가 청년을 훌륭하게 만드는가?’라는 두 번째 질문을 던졌고, 자기편으로 만든 여기 이분들에게말하라고 했다. 그러고는 답을 기다리지 않고 또 아이러니를 던졌다. “이것은 그대가 관심 갖고 있는 일이니 알게 분명하니 말이오.” 계속해서 가시 돋친 말을 이어갔다. “그대가 말하듯이, 그대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자로 나를 겨우 찾아내서는 배심원 앞으로 끌고 와 고소했으니 말이오.”

반복된 아이러니들, 자신을 겨우 찾아내서법정으로 끌고 왔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멜레토스가 머뭇거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대는 침묵하고 있고, 말할 것을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있다고 몰아 세웠다. 청년 교육에 관해 알지도 못하면서 관심이 많은 척한다는 비난의 말이었다. 소크라테스는 그 것이 곧 그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내 주장에 대한 충분한 증거라고 성급히 단정했다. 그리고 멜레토스의 그런 표리부동한 행태는 부끄러운짓이라고 질책했다. 그리고 누가 청년들을 좋게 만드는 지 물었고, 잠시 숨을 고른 멜레토스는 젊은이를 훌륭하게 만든 것은 법률이라고 답했다.

 

죽음, 철학 그리고 신의 음성

 

두 번째 가상질문 - 죽음 그리고 부끄러움: 아테네인 여러분, 멜레토스가 고소한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긴 변론이 필요치 않고 이것으로 충분해 보입니다. 하지만 내가 앞서 많은 사람들로부 터 심한 미움을 샀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진실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파멸 시키는 것입니다. 파멸시키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멜레토스나 아니토스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비방 과 시기입니다. 이것들이 많은 선한 사람들을 파멸시켰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습니다. 이런 일이 나에게서 멈추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여, 지금 그대를 죽음의 위험으로 몰고 가는 그런 일에 종사한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나는 이렇게 정당하게 답할 것입니다. “이봐요, 조금이라도 쓸모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것을 행할 때 오직 옳은지 그른지, 고귀한 자의 행동인지 비열한 자의 행동인지를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살게 될 것인지 죽게 될 것인지를 저울질해야 한다는 것이 그대 생각이라면, 그대는 심히 잘못 생각하는 것이 오. 왜냐하면 그대의 판단에 따르면, 트로이에서 전사한 그 많은 반신반인들, 그 중에서도 특히 테티스 의 아들조차도 하찮은 인물이 되고 말 것이오. 그는 치욕을 참고 견디기보다는 오히려 이처럼 위험을 무시했으니 말이오. 그가 헥토르를 죽이겠다고 열망하자, 여신인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내 기억으로는 대략 이렇게 말했소이다. ‘아들아, 네가 죽은 네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원수를 갚기 위해 헥토르를 죽인 다면, 너도 죽게 될 것이다. 헥토르 다음에는 바로 너에게 죽음의 운명이 준비되어 있단다.’ 그러나 아 킬레우스는 그 말을 듣고도 죽음과 위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친구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 못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두려웠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소. ‘악한을 응징하고 나서 당장 죽고 싶습 니다. 여기 부리처럼 휜 배들 옆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대지의 점으로 남느니 말입니다.’그대는 그가 죽 음과 위험을 걱정했다고 생각하시오?”

진실이 이렇습니다. 스스로 가장 좋은 곳이라 여겨서든 지휘관이 정해주든 어떤 곳에 일단 자리 잡으 면 누구나 위험을 무릅쓰고 자리를 지켜야 하며, 죽음이나 다른 어떤 것도 치욕보다 먼저 고려되는 일 은 없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고소장에 적시된 불법사유들에 대해 멜레토스와 문답을 나눈 소크라테스는 나중 고발에 대해서는 긴 변론이 필요치 않다고 했다. 지금까지 변론한 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나중 고발 은 처음 고발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그의 주장에 따른 것이다. 또 고소장에 명시된 죄목은 사실 자신 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라 길게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오히려 지금 법정에 서게 된 이유는 청년타락 죄나 불경죄가 아니라, 신의 명령을 따르고 신에게 봉사하는 과정에서 생겨 난 심한 미움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일관된 생각이었다.

소크라테스가 다른 무엇도 아닌 죽음, 자신의 삶 그리고 부끄러움을 이후 변론의 첫 주제로 제시했다 는 것은 결코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죽음의 위험에 대한 언급은 본 재판에서 사형을 받을 수 있 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을 뜻한다. 또한 죽음은 사형이 선고된 다음 변론의 마지막을 장식할 정도로 그의 단골 주제 중 하나였다. 나아가 죽음의 두려움은 인간의 심정을 가장 심하게 흔들 수 있는 정념 이었다. ‘부끄러움은 소크라테스가 모두변론에서 원고의 경고성 발언을 강하게 재반박할 때 사용했던 개념이고, 아테네 사회에서 가장 지탄받는 감정 중에 하나이며, 변론 전체에서 소크라테스가 가장 힘 주어 말한 단어 가운데 하나였다. 이제 그는 죽음의 위험에 처한 삶이 결코 부끄럽지 않다는 것을, 아니 오히려 목숨에 연연했다면 자신의 삶은 부끄러운 삶이었을 것이라고 강변할 것이다.

세 번째 가상질문 - 지혜사랑 그리고 조건부 무죄방면: 아테네인 여러분, 여러분이 선임한 내 지휘관이 포티다이아와 암피폴리스 그리고 델리온에서 나에게 위치를 정해주었을 때 나는 누구 못지않게 죽음을 무릅쓰며 내 자리를 지켰거늘, 그랬던 내가 이제 나 자신과 남들을 시험하며 지혜 탐구의 삶에 종사하라고 신이 정해주었을 때 - 나는 그렇게 믿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 죽음이나 다른 것이 두려워 내 자리를 뜬다면, 이는 분명 괘씸한 짓입니다. 그건 괘씸한 짓일 것이니, 그럴 경우에 내가 신들을 믿지 않는다는 것, 즉 신탁을 따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지혜롭지 않으면서 지혜롭다고 생각한다는 이유로 법정에 소환되어도 백번 옳을 것입니다. 여러분,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지혜롭지 않으면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그건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니까요. 죽음이 어쩌면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은 아닌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죽음이 인간에게 가장 나쁜 것이라고 아는 양 두려워합니다. 또 알지도 못하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그런 무지야말로 가장 비난받을 무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바로 이 점에서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를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만일 어떤 것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지혜롭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내가 저승의 것들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바로 이 점일 것입니다. 그러나 불의를 저지르는 것 그리고 그게 신이든 인간이든 더 훌륭한 자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은 나쁘고 수치스런 것임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나쁘다고 알고 있는 것들보다 실은 좋은 것일지도 모르는 것들을 더 두려워하거나 피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제 아니토스의 진술을 믿지 않고 나를 무죄방면 하더라도 내가 그렇게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가 진술하기를, 내가 애초에 법정에 끌려오지 않았거나 일단 끌려왔으면 사형에 처해질 수밖에 없고, 내가 풀려나면 여러분의 아들들은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실천하느라 타락할 것이라 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여, 우리는 이번에 아니토스의 말을 듣지 않고 그대를 무죄방면 할 것이오. 그렇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소. 그대는 더 이상 그와 같은 시험에서 손을 떼고 지혜사랑에 빠지지 마시오. 그대가 계속 그런 일을 하다가 붙잡히는 날에는 사형에 처해질 것이오라고 내게 말한다면, 여러분이 정녕 그런 조건으로 나를 방면하겠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아테네인 여러분, 나는 여러분을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여러분보다는 신에게 복종할 것입니다. 숨을 쉬고 힘이 있는 동안 나는 지혜를 사랑하는 일도, 여러분에게 조언하는 일도, 여러분 누구를 만나든 늘 하던 대로 다음과 같이 지적하는 일도 그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중략아테네인 여러분, 여러분은 이 점을 고려하여 아니토스의 말을 따르든 말든, 나를 무죄방면하든 말든 하십시오. 어쨌든 내가 몇 번이고 죽는 한이 있어도 내 태도를 바꾸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세 명의 고소인 중 정치인이자 장인이었던 아니토스와 드디어 마주했다. 아니토스를 나중 고소인의 대표 인물로 내세운 것으로 보아 소크라테스는 그 인물의 사회적인 영향력이나 나중 고소에서 그가 갖고 있는 위상을 충분히 감안했을 것이다. 추측하건대, 아니토스는 법정 고소에 가장 주도적인 고소인이었지만, 자신의 명성 때문에 젊은 멜레토스를 앞에 내세웠을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이 변론에서 정작 말하려 했던 것은 청년타락이나 형량의 문제가 아니었다. 변론의 주 대상은 여러분을 가상의 발언자로 설정, 그 응대 형식으로 사형을 전제한 무죄방면의 조건에 있었다.

앞에서 소크라테스는 전쟁터에서 조국이 지시한 일을 죽음이 두렵다 하여 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 자신이 신이 지시한 일을 피하는 것 역시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자신을 정당화했다. 그때 그에게 조국의 지시와 신의 지시는 충돌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무죄방면의 조건은 그 양자의 충돌을 담고 있다. 가상 발언자를 통해 소크라테스는 죽음의 길이냐 신의 길이냐, ‘여러분의 제안이냐 신의 지시냐를 두고 양자 선택의 길에 스스로 올랐다.

 

유죄판결 후 형량제의

 

소크라테스의 형량제의: 아테네인 여러분, 여러분이 유죄판결을 내린 것에 내가 못마땅해 하지 않는 데에는 다른 이유도 많지만, 그 주된 이유는 이번 결과가 내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는 오히려 양쪽 득표수를 보고 놀랐습니다. 차이가 이렇게 근소하지 않고 크게 날 줄 알았습니다. 30표만 반대편으로 갔어도 나는 방면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이제 멜레토스부터는 사실 무죄방면이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뿐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명백하듯이, 아니토스와 리콘이 나를 고발하려 나서지 않았더라면, 멜레토스는 1,000드라크메의 벌금까지 내야 했을 것입니다. 그는 총 투표수의 5분의 1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저 사람은 나에 대해 사형을 제의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나는 어떤 것을 제의해야 할까요, 아테네인 여러분? 그것은 분명 내가 받아 마땅한 것이어야 할 겁니다. 그럼 그게 무엇이겠습니까?

소크라테스는 대중에게 깊이 각인된 자신에 대한 편견과 법정에서의 가감 없는 도발적인 변론이 현격한 표차를 가져올 것이라 예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근소한 표차로 유무죄가 갈리자 그는 다시 만만한 멜레토스를 불렀다. 비록 죄인의 신분이 되었지만, 아니토스와 리콘이 고소에 합세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멜레토스 혼자 고소했다면 무죄방면 되었을 것이라 것은 일종의 비아냥이었다. 당시 고소 남발을 방지하기 위해 고소인이 총 투표수의 5분의 1을 얻지 못할 경우 1,000드라크메의 벌금을 무는 것이 아테네 형법이었다. 세 명의 고소인이 얻은 280표는 일인당 약 93표일 터, 멜레토스 혼자 고소했다면 100표를 얻지 못해 1,000드라크메의 벌금을 물고, 피고는 무죄석방 되었을 것이다. 이 와중에도 멜레토스를 물고 늘어질 정도로 그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노여움은 대단했다.

예상대로 원고는 사형을 제의했다. 무슨 말로 그렇게 제의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불경죄로 고소한 마당에 다른 대안이 없었을 것이다. 이제 피고의 차례다. 지은 죄가 없다고 주장한 그로서는 무죄에 버금가는 형량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제의했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고의로 불의를 가한 적이 없다고 확신합니다. 그것을 다만 여러분에게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이야기한 시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다른 나라들에서처럼 사형에 해당하는 사건은 단 하루 만에 끝내지 않고 여러 날에 걸쳐 재판한다는 법률이 있었다면, 나는 여러분을 납득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짧은 시간에 심한 비방들을 제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불의를 입히지 않았다고 확신하는 터이니, 내가 어떤 나쁜 것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어떤 것을 제의해서 나 자신에게 불의를 끼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내가 뭐가 두려워 그런 짓을 해야 합니까? 멜레토스가 제의한 형벌을 받지나 않을까 해서요? 앞서 말했듯이, 나는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 대신 내가 나쁜 것이라고 익히 알고 있는 것들 가운데 하나를 골라 형벌로 제의해야 할까요? 감옥형이요? 하지만 내가 왜 11명의 감독관에게 돌아가면서 감시당하며 감옥살이를 해야 합니까? 아니면 벌금을 다 물 때까지 감옥살이를 해야 하는 벌금형이요? 내 경우에 그것은 감옥형과 마찬가지입니다. 벌금 낼 돈이 없으니까요. 아니면 추방형을 제의해야 할까요? 아마 여러분은 이 제의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군요. 그러나 그렇게 되면 나는 살려고 발버둥 치는 인간이 되고 말 것입니다. 중략

여러분, 이것들은 내가 말하는 그대로이지만, 여러분을 믿게 만드는 것이 쉽지 않군요. 게다가 나는 어떤 나쁜 것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데 익숙지도 않습니다. 다시 말해, 내가 만약에 돈이 있다면 내가 물 수 있을 만큼의 벌금형을 제의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에게 전혀 해가 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나는 돈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내가 물수 있을 만큼의 벌금을 물리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은화 1므나 정도는 낼 수 있을 것 같군요. 그래서 나는 그 정도의 벌금형을 제의합니다. 그런데 아테네인 여러분, 여기 있는 플라톤, 크리톤, 크리토불로스, 아폴로도로스가 자기들이 보증을 설 테니 30므나의 벌금형을 제의하라고 하는군요. 그래서 나는 이 금액의 벌금형을 제의하고, 그 금액에 대해서는 이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믿을 만한 보증인이 되어줄 것입니다.

 

사형선고 후 최후진술

 

아테네인 여러분, 여러분은 시간을 조금 벌려다가 이 나라를 헐뜯으려는 자들로부터 현자 소크라테스를 죽였다는 비난의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나는 현자가 아니지만 여러분을 비방하려는 자들은 나를 현자라고 말할 테니까요. 여러분이 조금만 기다렸더라면, 그것은 여러분에게 자연스럽게 일어났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보다시피, 나는 이미 오래 살았고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 말을 여러분 모두가 아니라 나를 사형에 처하게 한 사람들에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할 말이 또 있습니다. 여러분, 만약 내가 여러분들로부터 방면되기 위해 무슨 짓이나 무슨 말이나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면, 여러분은 아마 내가 여러분을 움직일 수 있는 말들이 부족해서 유죄판결 받았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그건 결코 아닙니다. 내 유죄판결에서 부족한 것은 말이 아니라 뻔뻔함과 몰염치이며, 여러분이 듣기에 가장 좋은 말투로 말하려는 의지가 나에게 부족했던 것입니다. 중략

여러분, 죽음을 피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사악을 피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죽음보다 사악의 발이 더 빠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느리고 연로해서 더 느린 것에 따라잡혔지만, 내 고소인은 영리하고 민첩해서 더 빠른 것, 즉 사악에 따라잡혔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여러분들로부터 죽음의 선고를 받고 여기를 떠나지만, 그들은 진리로부터 사악과 불의로 소환되어 판결을 받을 것입니다. 또한 나는 내 판결 주문에 따르고, 그들은 그들의 주문에 따라야 합니다. 이번 일은 이렇게 되도록 되어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된 것이 잘된 일이라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나는 유죄판결을 내린 여러분에게 예언하고 싶습니다. 나는 지금 사람들이 예언을 가장 잘한다는 죽음의 문턱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사형판결을 내린 여러분, 제우스에 맹세코 내 말하지만, 내가 죽은 다음에 바로 나를 죽인 것보다 훨씬 더 가혹한 처벌이 여러분에게 닥칠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에게 이런 짓을 한 것은, 여러분의 삶이 심문받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말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일 것입니다. 중략이것으로 유죄판결을 내린 이들에 대한 예언을 끝내고 나는 여러분을 떠납니다. 그렇지만 무죄방면에 투표한 분들과는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법정 관리들이 업무를 처리하느라 내가 아직 죽을 자리로 떠나기 전까지라도 말입니다. 중략재판관 여러분, 여러분도 즐거운 희망으로 죽음을 맞이해야 하고, 선한 사람에게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그 어떤 악도 일어날 수 없으며, 신들은 그런 사람의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이 한 가지 진리만은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지금 나에게 일어난 일도 우연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제 죽어 고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나는 의심치 않습니다. 그래서 신의 신호도 나를 막아서지 않았던 것이며, 나 또한 나에게 유죄 표를 던진 이들과 나를 고소한 이들에게 전혀 화를 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물론 그런 의도로 유죄를 판결하고 고소를 한 것이 아니라 나를 해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비난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런 만큼 나는 그들에게 부탁이 있습니다. 여러분, 내 아이들이 장성했을 때 덕보다 오히려 돈이나 그 밖의 다른 것들에 골몰하고 있다 싶으면, 내가 여러분을 괴롭힌 것과 똑같이 그 아이들을 괴롭히고 보복하십시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그랬듯이 자기들이 해아 할 것은 하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고 나무라 주십시오. 여러분이 그렇게 해준다면, 나도 내 아이들도 여러분에게 정당한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은 살러 갑니다. 우리 중에 누가 더 좋을지는 신 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마지막 당부: 사형이 확정된 후 소크라테스는 최후진술을 시도했다. 모양새는 작별인사였다. 그는 유죄 쪽 배심원에게는 악담을, 무죄 쪽 배심원에게는 덕담을 이별의 말로 건넸다. 유죄 쪽 배심원에게 먼저 말했다. 그들에게 한 진술은 크게 두 부분, ‘예언이전과 이후로 진행되었다. 예언 이전 부분에서 소크라테스는 두 가지를 이야기했다. 하나는, 그들이 아테네를 비방하려는 자들로부터 현자 소크라테스를 죽였다는 악명과 비난을 받는다는 것, 또 하나는 유죄판결의 이유가 설득할 말이 아니라 뻔뻔함이나 파렴치 그리고 배심원에게 잘 보이려는 의지의 부족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은 예언 이전 부분을 마무리할 때 갑자기고소인을 끌어들였다. 유죄 쪽 배심원이 아니라 고소인에 대한 비난으로 그 끝을 채웠다. 고소인에 대한 비난은 유죄 쪽 배심원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방식과 정도의 차이가 분명했다. 돌리지 않고 바로 비난했다. 비난의 강도는 훨씬 더 노골적이고 신랄했다. 유죄 쪽 배심원과는 달리 고소인을 비열하고 사악한 자로 간주했다.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유죄 쪽 배심원에게 예언을 전했다. 그들이 자신을 죽게 한 것보다 더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더 많고 더 심한 캐물음을 당할 것이라는 예언은 사실 듣는 이에게 두려움이나 수치심을 불러올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불의의 삶에서 벗어나는 가장 아름다운 길은 스스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조언의 말로 작별인사의 마무리를 장식했다. 그러나 이때 고소인에 대한 조언이나 배려는 일절 없었다. 최후 진술의 다음 차례는 무죄 쪽 배심원이었다. 소크라테스는 그들을 아테네 최고 가치 중의 하나인 우정으로 대했다. 그리고 진정한 재판관으로 대우했다. 당일 법정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즐거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대화를 청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부탁할 것이 있다고 하면서 시민 여러분을 불렀다. 그리고 자기 아이들에 대한 두 가지 부탁을 말했다. 그것은 통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하나는 아이들에게 보복하라는 부탁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이들을 비난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보복의 경우, 그들이 영혼이나 덕을 돌보지 않고 돈이나 명성이나 권력과 같은 것들을 욕구한다면, 자기가 여러분을 들들 볶아 고통스럽게 했듯이 여러분도 그들에게 똑같은 고통을 주어 보복하라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여러분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는 고통은 몰라도 받는 고통은 분명 피하고 싶은 악이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여러분에게 악을 행했고, 그는 악인이었다.

그러나 동기주의자인 소크라테스는 달리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의 행위가 고통이라는 악을 산출했지만, 그것은 진정한 삶의 행복을 주려는 선한 의도에서 그랬다고 말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성장한 아이들을 여러분의 보복 대상으로 상정했다. 청년 아들이 돈이나 밝히고 있다면, 죽어 없어진 자신을 대신해서 등에질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 부분에서 자신의 죄목 가운데 하나인 청년타락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또한 살아도 죽어도 캐물음은 삶의 최고 가치라는 것을 재차 강조하고 자신의 순수성과 일관성을 여러분에게 각인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를 지금의 소크라테스로 만든 그의 어록들 가운데 하나가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의 마지막 문장, 바로 이것이었다.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죽으로 가고, 여러분은 살러 갑니다. 우리 중에 누가 더 좋을지는 신 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가 마지막 순간까지 마주한 이는 아테네도 아테네인도 친구 재판관도 방청석의 지인도 아들도 아닌 자신을 죽게 한 유죄 쪽 배심원과 고소인이었다. 그가 그 순간에도 잊지 않고 거론한 이는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아닌 어린 시절부터 속삭인 그만의 다이몬이었다. 이승길에서 신의 사명에 따라 철학적 삶을 살았던 그리고 그렇게 살라고 권했던 철학자 소크라테스, 저승길에서도 인간적 죽음으로 이끈 이들을 결코 묵과할 수 없었던 인간 소크라테스의 단면이 묻어나는 순간이었다. 그는 철학자이자 어찌 할 수 없는 한 인간이었고, 그는 인간이자 어찌 할 수 없는 한 철학자였다.

그는 적어도 스스로에게 선한 사람,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었다. 그는 적어도 스스로를 속이지 않았고, 돈과 명성을 얻기 위해 구차하고 수치스럽고 비열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고 자신했다. 그는 타인의 악을 악으로 갚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도 선한 사람이 악을 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좋은 사람은 타인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 이것은 살아서는 물론, 죽음 앞에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소크라테스의 확신이었다.

사형이 집행되기 며칠 전 죽마고우 크리톤이 탈옥 후 해외망명을 권했지만 그가 이를 거부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삶의 길에서 늘 그랬듯이, 죽음의 길에서도 선한 사람 그에게 신의 돌봄이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그가 독배를 들고 숨을 거두기 직전, 의술과 치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빚진 닭 한 마리를 갚아달라는 마지막 부탁의 말을 크리톤에게 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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