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주현성
실존주의와 니체에 빠져 학창 시절을 보낸 후,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면서부터는 사회학과 심리 치료를 꾸준히 공부했다. 매일 눈뜨면 30분 이상의 독서를 생활화하면서, 작게는 사회학 방법론의 고민으로부터 시작해 역사, 예술, 문학, 현대 철학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두루 지적 편력을 넓혀왔다. 인문 문학 출판사 편집장을 거쳐 10년 넘게 출판 기획자로 활동하면서, 인문 및 청소년 분야의 다양한 양서들을 기획했다. 우리 시대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인문 지식에 대해 체계적으로 집필한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은 단기간에 30만 부 이상이 판매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밖의 저서로는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2』, 『청소년을 위한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가로 읽기’ 편과 ‘세로 읽기’ 편이 있다.
▣ Short Summary
진짜 자신과 만나는 놀라운 마음 여행! 온전한 자존감 회복의 길!
니체는 우리가 수시로 좌절하고 자신을 사랑하기 힘든 이유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외면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거짓으로 자신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스스로가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제대로 볼 수 있을 때, 진짜 나의 마음을 알게 되고 진정한 자신도 받아들일 수 있다. 니체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이제까지의 거짓된 변화의 악순환을 끊고 진정한 변화 또한 가능하다고 말한다. 즉 나의 감정을 제대로 읽을 때, 진짜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니체의 대표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수많은 책들 속에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방법들이 담겨 있는데, 이것은 바로 니체의 핵심 사상인 ‘초인’이 되는 법이기도 하다. 그가 말하는 초인은 바로 이런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기답게 살아가는 당당한 사람에게 붙인 이름이다. 결코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자존감을 가진 자에게 붙는 별명인 것이다.
우리는 『오늘 잃어버린 자존감을 찾았습니다』를 통해 한 점 거짓 없이 자신을 보기 시작하고, 기꺼이 자신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놀라운 경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자신의 감정이 서서히 바뀌고, 더 이상 흔들리거나 후퇴하지 않는 자존감으로 거듭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니체가 말한 초인으로 거듭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니체는 자신을 최초의 심리학자라고 말한다. 영어권 최고의 니체 해석자인 카우프만(Walter Kaufmann) 역시 “니체 철학의 심리학적 성격을 간과한다면 니체를 오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만큼 니체는 철학자인 동시에 인간의 내면을 낱낱이 파헤친 심리학자이다. 또한 그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수많은 아포리즘들을 남긴 시인이자 문학가이기도 하다. 여기에 저자는 이해를 돕기 위해 현대 최고의 심리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로저스의 심리 이론을 더하면서, ‘나답게 살아가는 법’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오늘 잃어버린 자존감을 찾았습니다』를 통해 자존감을 찾아가는 여정은 철학자 니체와 심리학자 니체, 시인 니체, 그리고 심리학자 로저스를 한데 아우르는 다채롭고 이색적인 여행이 될 것이다. ‘철학•심리학•문학’ 등이 뒤섞인 다방면에 걸친 지식과 명쾌한 설명들 속에서, 우리는 자존감에 대한 한 편의 콜라보 에세이를 보는 듯한 감동을 경험할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난해하던 니체의 말들이 가슴을 파고드는 명언으로 되살아나는 기쁨 또한 맛보게 될 것이다. 이제는 머리로만 아는 지식이 아니라 어느새 전혀 새로운 자존감으로 무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차례이다.
고된 삶의 여정에 지친 사람들에게 『오늘 잃어버린 자존감을 찾았습니다』는 무한한 위로와 새로운 희망을 선물하며, 온전한 자존감을 회복하는 길로 안내할 것이다. 니체와 함께 자존감을 되찾는 첫걸음을 디뎌보자.
▣ 차례
들어가는 말_ 쉽게 흔들리는 자존감은 자존감이 아니다
제1장. 고통을 즐기는 가장 발랄한 방법
나 이전에 심리학은 존재하지 않았다
고통이 주는 선물
고통은 앎을 증대시킨다
다시 태어나는 몸
고통은 허무주의를 치유한다
불공평한 삶을 이해하는 법
제2장. 어제까지 나를 지배하던 것들
도대체 나는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가
신은 죽었다
유행이 끝난 진리
아직 알려지지 않은 소식
입법자
나답게 살아가는 자, 초인
초인에 대한 오해
제3장. 가짜 자존감들
세상에 길들여졌다는 것
되살아난 신들
과학이라는 이름의 신
최후의 인간
가짜 자기를 뒤집어쓴 최후의 인간
깊은 후회가 스며드는 날에는
절대 후회하지 않는 법
니체가 권하는 사유 실험
삶의 최대 중량
제4장. 나답게 산다는 것은
어떻게 나답게 살 것인가
로저스의 칼
다재다능한 섬 사상
진정한 변화를 시작하자!
제5장. 나의 감정과 마주하다
몰락을 두려워하지 마라
감정을 받아들여라
포유류의 뇌
좀 더 솔직하게, 좀 더 일치성 있게
제6장. 진정한 나를 만나다
몸은 보다 큰 이성이다
내 몸의 소리를 들어라
감정은 여러 겹으로 되어 있다
몸의 반응을 통해 나를 해석한다
몸을 보는 자와 몸을 보지 않는 자
제7장. 건강한 자존감은 꿈에 부풀게 한다
힘에의 의지를 보라
되살아난 힘에의 의지, 실현경향성
네 운명을 사랑하라
그림자로부터 자유로운 입법자
입법자는 이기주의자다
감정을 말하고 감정을 듣는 자
정말 잘 듣는 비결
가장 인간적인 행동
제8장. 자신의 길을 가는 자는 춤추듯 간다
사자가 못한 일을 어린아이가 한다
놀기 위해 태어난 자
천재는 낭비하는 자다
니체의 주사위
위험하게 살아라!
저절로 춤추는 발
나의 길을 춤추듯 간다
나오는 말_ 하늘 높이 나는 자는 작아 보이게 마련이다
참고 문헌
▣ 차례
들어가는 말
쉽게 흔들리는 자존감은 자존감이 아니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 ‘내가 왜 이랬지?’ 하고 후회를 하고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거기까지만 하면 된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 일 하나로 이제껏 가져왔던 자신의 능력들을 부정하거나 자기 비하에 빠지곤 한다.
이성이나 인간관계가 조금만 틀어져도, 작은 키, 못난 외모, 넉넉하지 않은 경제력 등을 내세우며 신세 한탄을 한다. 일이 조금만 틀어져도 모난 성격, 둔감한 센스, 물러터진 대응을 끄집어내며 자신의 성격이나 태도를 비난하기도 한다. 평소 자신감에 차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잘 내던 사람들조차 조금만 예상 밖의 일이 생기면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붙이며 자기혐오에 빠져들기도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사실 자기에 대한 신뢰도 확신도 없는 사람들이다. 말 그대로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쉽게 낙담하지 않는다. 언제나 자기 자신을 신뢰하기 때문에 일이나 인간관계에 다소 문제가 생겨도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럴 시간에 서둘러 원인을 찾고 대안을 마련한다. 매 순간 자신을 존중하고 스스로에게 솔직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희생도 하지 않는다. 남을 탓하거나 원망할 일도 없다. 애써 타인과 비교하지도 않는다. 여기저기 눈치를 살피지도 않는 그들은 언제나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간다.
다행히 요즘 그런 자존감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고, 그만큼 자존감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도 매우 높아졌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존감이야말로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게 하고, 불안과 낙담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안다는 것만으로 모든 게 저절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사랑해야 하고 믿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실제 삶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항상 ‘안 그래야지’, ‘다음엔 안 그럴 거야’ 하고 다짐하면서도 여지없이 그대로이다. 나는 변하지 않는다. 자신을 사랑하자고 해서 사랑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오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좋아하지도 않는 이성을 만나 당장 진실한 사랑을 불태우라고 하는 것과 같다.
‘나를 사랑해야 해’, ‘나를 믿어야 해’라고 아무리 다짐해도 나를 사랑할 수도 믿을 수도 없는 것이다. ‘나 자신을 믿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사랑하자’고, ‘나는 괜찮다’고, 아무리 다독여도 안 된다면,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감히 니체에게서 그 답을 찾으라고 말하고 싶다. 니체의 소중한 말과 글들이 그것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 되어줄 거라고 믿는다. 아무리 다독이고 다독여도 힘겨운 날들이 거듭되거나 죽고 싶을 만큼 절망의 순간이 엄습해온다면, 나는 그때야말로 니체를 만나야 할 때라고 말하고 싶다.
니체는 태어나면서부터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수많은 질병과 통증, 불면증 등으로 평생을 고통 받았다. 여기에 실연과 외로움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사상마저 철저히 외면 받았다.
하지만 그는 자기 삶을 불평하지도 좌절하지도 않았다. 헤어 나올 수 없는 고통의 구렁텅이 속에서 오히려 그는 그것을 이겨내고 승화하는 방법들을 익혔다. 또 그것들을 삶에 대한 통찰과 자신의 새로운 사상에 녹여냈다.
니체는 매 순간 자신을 사랑했고, 매 순간 자신을 믿었다. 수 없이 고통 받던 순간에도 모두가 외면했던 순간에도 그는 자신을 사랑하고 아꼈다. 자신의 가혹한 운명조차 사랑했다. 그야말로 탁월한 자존감의 소유자였고, 매 순간 긍정으로 무장한 자존감의 소유자였다.
누군가는 니체의 당돌한 기세와 굳건한 의지를 단순한 고집으로 폄하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보라! 마침내 그의 사상이 오늘날 우리가 너무나 당연시하는 세계관이 되어 우리를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모두가 그를 현대 철학의 아버지라 칭송하고 그의 주옥같은 말들을 수없이 책으로 옮겨내고 있지 않은가? 그는 무한한 긍정, 굳건한 자존감으로 자신의 삶을 재창조하고 세상의 가치들을 새롭게 쓴 승리자다.
이 책에는 니체의 삶과 사상 그리고 굳건한 자존감을 소유한 그의 탁월한 방법들을 소개해놓았다. 그의 사상의 핵심 키워드인 ‘초인’은 바로 이런 긍정의 신, 자존감의 최고 고수에게 주어지는 이름이다.
그의 대표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또한 우리에게 쉽게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에 이르는 길을 안내하는 안내서이다. 이 모호하기로 이름난 안내서를 좀 더 쉽고 좀 더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나는 때때로 로저스 심리학의 이론을 빌려 설명하고자 한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Carl Ransom Rogers)는 니체의 핵심 사상들을 수많은 임상실험을 통해 자신의 심리학 이론으로 거듭나게 했다. 니체의 ‘힘에의 의지’와 ‘초인 사상’이 로저스를 통해 실천방법으로 제시되고, 그 방법이 우리를 쉽고 명확한 자존감 회복의 길로 안내해줄 것이다.
나는 니체와 그의 책에서 굳건한 자존감을 얻는 법,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에 대한 많은 힌트를 얻었다. 또 진정한 나로 거듭나고 나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많은 것을 배웠다. 이런 니체의 소중한 지침들을 나 혼자만 품고 있기엔 너무 가슴이 벅찼기에 오랫동안 이 책을 준비했다.
여러분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삶을 좀 더 알차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 책을 덮는 순간 그토록 모호해 읽는 것조차 고역일 수 있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어렵지 않게 읽어내는 행운도 함께 얻길 바란다.
무엇보다 오늘, 당신이 잃어버린 자존감을 되찾는 첫걸음을 뗀 것을 축하한다.
고통을 즐기는 가장 발랄한 방법
고통은 앎을 증대시킨다
니체는 ‘지독한 질병’과 ‘고통’이 많은 변화를 일으킨다고 말한다. 때때로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거대한 변화까지도 말이다. 니체는 심지어 질병과 고통에서 회복기로 돌아오는 기간을 “감동 없이는 회상할 수 없는 중간 상태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떠한 변화가 잇따르기에 고통을 그리도 감사한단 말인가?
니체는 먼저 일상적인 것과의 단절을 지적한다.
병에 걸려 누워 있는 사람은 깨닫게 된다. 때때로 자신이 자신의 일상적인 직분이나 업무, 또는 교제에서조차도 병에 걸려 있었다는 사실을. 그 때문에 스스로에 대해 깊게 숙고하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의 질병으로 인해 강요된 한가함이 이런 지혜를 얻게 만든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니체만큼은 아니더라도 크게 병을 앓아본 사람이라면 유사한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커다란 고통은 그동안의 모든 흐름을 깨고 자신의 몸과 삶에 집중하는 계기를 만든다. 지속되는 병원 생활 또한 일에 함몰되어 있던 그동안의 생활 패턴으로부터 갑자기 자신을 단절시켜버린다.
우리는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곤 한다. 니체처럼 고약하게 오랜 고통에 시달린다면, 아마 그 단절은 훨씬 더 큰 것이었으리라. 이런 단절은 다른 변화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관점,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정신의 변화’가 바로 그것이다.
깊은 고독, 모든 의무와 습관으로부터의 갑작스러운 자유, 이 모든 지적 이점을 제외하더라도, 힘겨운 병의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은 섬뜩할 정도로 냉정하게 세계를 바라본다. 그에게서는 건강한 사람의 눈이 보는, 그런 사물을 둘러싸고 있는 하찮고 기만적인 매력들이 사라져버린다. 아니 그 전에 자기 자신이 솜털도 색깔도 없이 자신 앞에 놓이게 된다. 그가 이제껏 위험한 환상 속에서 살아왔다 면, 이렇게 고통을 통해서 최고의 냉철함을 되찾는 것이 그를 환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그것도 아마 유일한 수단일 것이다. -『아침놀』
자신에게 지속되는 극도의 고통은 오직 자신의 몸과 생명에만 집중하게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동안의 사회적 의무와 관습, 그저 앞다투어 탐했던 다양한 욕망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그것은 마치 이제까지 보고 익힌 모든 것을 전부 걷어내고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
그렇게 우리가 배워왔던 익숙한 길, 익숙한 가치, 익숙한 방법을 벗어던졌을 때 우리 앞에는 전에 볼 수 없었던 다양한 길, 다양한 가치, 다양한 방법이 열리게 된다.
사람들은 마치 자기 안에서 무수한 다양성을 본 적이 있는 사람처럼 변해버린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그렇다. 질병과 고통은 그렇게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시각을 던지는 기회이며, 새로운 인식을 낚는 낚싯바늘이 된다.
그렇다면 질병이나 고통뿐 아니라, 우리에게 닥친 지독한 시련과 절망 또한 이와 같지 않을까? 감당하기 힘든 시련과 절망 속에서 우리는 부수어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우리의 진실한 욕구와 새로운 눈,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에게 고통과 시련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행히 우리는 니체의 다양한 조언이나 로저스 심리학의 도움을 통해 고통 없이 그러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까지 나를 지배하던 것들
나답게 살아가는 자, 초인
한때 더 많은 발전, 더 많은 생산을 기치로 목표만 보고 달려가던 시절이 있었다. 더 좋은 사회, 더 강한 국가나 더 강한 기업을 앞세워 개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시대가 있었다. 뛰어난 팀을 만들고 뛰어난 조직원이 되기 위해 철저한 자기계발을 독려하던 시대도 있었다. 더 많은 돈, 성공을 위한 더 많은 자기계발은 여전히 각광받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많은 사람들이 자기 삶을 돌보고, 자신을 위로하고, 스스로에게서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온전히 나답게』,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나 『있는 그대로 참 좋다』, 『어디 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등 최근 ‘자기답게’를 강조하는 수많은 위로의 책들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불경기, 실업, 치열한 경쟁 등으로 위로와 내적 성찰을 원하는 분위기도 한몫한다.
그러나 이전보다 이런 메시지들이 자연스럽게 들리고 갈수록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어쩌면 한 사람 한 사람씩 알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이, 원래의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부자연스러움으로부터, 자기의 정신으로부터 가장 회복이 잘되는 것은 자기의 본성 안에서이다. -『우상의 황혼』
원래의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자기만의 삶을 자기답게 살아가는 것, 그것을 우리는 ‘입법자’라고 바꿔 쓸 수 있다. 입법자란 스스로 법을 세우고 그 가치와 의미에 따라 사는 것이고, 자기답게 사는 것 역시 자신만의 가치와 의미를 가지고 그에 따라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타인의 가치와 기준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오직 자신이 느끼는 의미와 즐거움을 중시하며 살아가는 모습인 것이다.
우리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한다. 새로운 사람,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 비교할 수 없는 사람, 자기 스스로가 스스로의 입법자인 사람, 스스로를 창조하는 창조자! -『즐거운 학문』
그러므로 초인의 또 다른 이름, 아니 입법자의 또 다른 이름은 ‘자기답게 사는 자’다. ‘자기 자신이 되는 자’다. 그것이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의 양심은 무엇이라 말하는가? “너는 너 자신이 되라!” -『즐거운 학문』
그렇다면, 어쩌면 최근의 이런 상황들은 여기저기서 초인을 꿈꾸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지 모른다! 어쩌면 너도 나도 초인을 꿈꾸기 시작한 것인지 모른다. 니체는 200년이 지나야 자신의 진가를 알아본다고 말했지만, 이미 그의 시대가 우리 안에 펼쳐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어떻게 나답게 살 것인가
신은 죽었지만 여전히 신의 그림자는 우리 삶의 곳곳에서 우리를 옭아매고 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는 모든 자리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관습과 의무에 휘둘리고 있다. 혼자 있든 함께 있든 그 순간순간 해야 할 의무들과 지켜야 할 체면, 언제부터인지 자리 잡은 끈질긴 신념들이 따라다닌다.
어떤 것에 대해 갑자기 질문을 받았을 때, 보통 우리에게 떠오르는 최초의 견해는 우리 자신의 견해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의 계급, 우리의 지위, 우리의 출신에 속하는 일반적인 견해일 뿐이다. 우리 자신의 견해가 쉽게 드러나는 경우는 드물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문제는 그것들이 우리를 끝없이 비교하게 하고, 주눅 들게 하며 지치게 한다는 것. 그것들은 우리의 진정한 욕구나 현실적 필요들을 가려 왜곡시키고 원하지 않는 삶을 당연한 듯 살아가게 한다. 도대체 누구의 삶을 사는 것인지, 무엇에 만족하며 사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마음속 깊이 심리적 저항과 허탈감만이 따라다닌다. 그래서 말한다. 삶이란 원래 이런 것이라고. 삶은 고역이라고! 인생은 허무한 것이라고!
하지만 니체는 원래의 제대로 된 삶은 그 반대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용감할 때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히려 그것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즐거운 학문』
언제나 호기심이 가득하고, 즐거운 것이며, 희망에 차고 기대가 돼서 매 순간 삶을 갈망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고통과 허무의 구렁텅이에서 우리를 끌어올리기 위해 니체가 보여준 것이 ‘초인’인 것이다.
니체는 신을 거부하고 스스로가 법을 세워 자기답게 살아야 한다고 외쳤다. 자기를 부정하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매순간 긍정으로 맞서라고 말한다. 살아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그 기쁨을 만끽하라고 말한다. 이것이 ‘초인’이다.
나의 가르침은 이것이다. 사람들이 건전하고 건강하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
자기 자신을 견뎌내면서 쓸데없이 방황하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로써 초인 사상을 충분히 이해했다. 이제 우리는 쉽게 방향을 정할 수 있고, 우리 역시 초인을 꿈꿀 수 있다. 실천하는 것만 남았다. 분명한 것은 그것을 우리가 머리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무엇이 니체의 철학이고 초인이 어떻게 나타난 것인지를 우리는 이성적인 논리에 의해 머리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실천을 통해 니체의 초인 사상을 내 삶에 적용하고 또 내가 초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거듭난다’는 것. 그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변하는 것이다. 그저 ‘초인이 어떻게 되느냐’를 아는 것이 아니라 초인처럼 느끼고 초인처럼 반응하는 것이다.
니체가 어떻게 쉽게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을 얻게 되었는지 상기해보자! 그것은 그저 지식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고통을 통해 몸이 바뀐 것이었다. 표범이 나무늘보가 되는 것이고, 그래서 더 이상 달리고 싶지 않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부정적인 사람이 긍정하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그저 사는 게 즐거워 기쁜 사람의 감각으로 바뀌어버리는 것이다. 생각이 아니라 감정과 감정 반응이, 또 몸이 변해야 한다. 달리 니체의 사상을 몸의 사상이라고 부르겠는가.
누군가는 이 순간 황당한 소리라고 폄하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가능하다. 이제껏 수많은 임상심리 결과가 그것을 증명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 반응을 바꾸고 몸의 감각을 바꾸어 저절로 우러나는 긍정을 만끽하고 산다. 무엇보다 몸의 반응이 바뀌어야만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자존감을 소유할 수 있다. 살아 있음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감정 반응을 가져야만 더 이상 자기 부정으로 후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제 우리에게는 심리학자로서의 니체가 필요하다. 그것은 단순한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변화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생각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과 몸의 변화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니체 철학의 힘 또한 인간의 심리에 대한 깊은 통찰, 즉 심리학에서 온 것이 아닌가. 그가 스스로를 심리학자라고 자칭한 것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니체 철학의 심리학적 성격을 간과한다면 니체를 오해할 수밖에 없다”는 카우프만의 말을 기억하자.
이렇게 언어를 넘어 몸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니체 철학이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니체 철학의 심리학적인 면모를 이해하고, 실제로 생활 속에서 몸의 반응을 바꾸기 위해 칼 로저스의 심리 이론을 빌려와 설명하고자 한다. 칼 로저스는 랑크에 의해 니체의 사상을 이어받은 심리학자이다.
(칼 로저스는 자신의 연구 활동의 가장 역동적인 시기에 랑크의 제자들과 함께 활동했다. 랑크의 제자인 엘리자베스 데이비스와 그의 동료들의 견해는 로저스의 사상과 임상 활동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으며, 랑크의 생애사를 저술한 제시 태프트의 업적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로저스는 직접 자신이 제시 태프트에게 빚지고 있으며 ‘랑크 계열의 사상에 물들어 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로저스는 인간 중심의 심리학, 대화치료를 창시했으며, 현대 상담심리의 근본을 구축해놓았다. 정신분석의 거장이 프로이트이고, 행동심리학의 거장이 스키너라면, 현대 심리학의 나머지 한 분파인 인본주의 심리학의 가장 대표적인 거장이 로저스이다. 보통 이 세 사람이 심리학 및 심리치료의 주된 흐름을 대표한다. 그는 죽기 직전 미국에서 프로이트를 뛰어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로 칭송받았으며, 2012년 영국의 심리 상담의 경우만 보더라도 70%가 로저리안이었다. -『인간중심 상담의 임상적 적용』)
프로이트의 제자들 중 가장 뛰어난 니체 전문가였던 랑크의 사상이 제자들을 매개로 로저스에게 이어진 것이다. 로저스는 니체 사상에 수많은 임상심리학적 경험과 현대 상담기술의 표본이 된 자신만의 대화법을 접목해 인간 중심의 심리학을 구축해냈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마치 초인을 연상케 하는 놀라운 긍정과 자존감을 회복시켜온 그의 심리 기법과 이론들을 통해 우리는 니체 사상의 핵심인 ‘초인’의 실천 방법들을 더 쉽고 생생하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감정과 마주하다
감정을 받아들여라
그렇다. 몰락은 선악을 넘어서는 방법이고, 더 강하게 다시 떠오르는 방법이다. 더 밝게 긍정하는 방법이다. 어쩌면 이미 당신은 섬 사상(너는 너, 나는 나)을 실행에 옮기면서 그 몰락을 익혀가고 있는지 모른다. 생각과 경험이 다르기에, 다소 부정적으로 보이거나 혹은 다소 어두워 보이는 나의 생각과 경험 또한 기꺼이 허용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꺼이 다르게 생각하거나 판단할 수 있다. 좀 더 삐딱할 수도 있고, 좀 더 탐욕스럽거나 유치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생각에 머물러 있고, 생각을 허용했을 뿐이다. 이제 진짜 몰락을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나의 생각뿐 아니라 나의 감정까지도 몰락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일이다. 우리가 수용해야 할 것은 단순한 이해가 아니라 정말 나 자신이어야 한다.
누군가는 반문할지 모른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고, 우리는 이성을 통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감정이란 한낱 이성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나약한 본능일 뿐이라고.
하지만 오늘날 최첨단 뇌 과학은 완전히 독립된 이성이나 논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이성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조차 끊임없이 감정에 물들게 되어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감정이 원래 타고난 우리 몸의 경보 신호라는 점이다. 우리는 포식자가 나타나면 두려움의 감정이 일어나고 적과 싸워야 할 때는 분노의 감정이 생긴다. 썩은 고기나 더러운 것에는 혐오감이,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할 때는 외로움이 사무친다. 또 행복감이나 사랑의 감정은 그 상태를 좀 더 오래 유지하게 하고 타인들과 함께 어울리게 한다.
이렇듯 감정과 느낌은 우리가 행동하는 데 꼭 필요한 정보를 보내고, 우리는 이를 알아채고 행동에 옮기면서 생존해올 수 있었다. 인류는 인간으로 분화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런 감정의 신호들에 의존해왔다. 그만큼 감정은 우리 자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우리의 타고난 반응 그대로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러한 감정을 잘 살핀다면 우리 자신의 진정한 욕구와 반응들을 더 잘 볼 수 있게 되고, 반대로 이를 무시하면 우리 자신이 보내는 무수한 신호들을 왜곡하고 억압하게 되는 것이다.
두려움이나 분노, 외로움 등 모든 감정은 필시 그 이유가 있어 생겨나고, 우리에게 그것을 알리기 위해 경보음을 울리는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알아보고 어떤 형태로든 대처해주었을 때 그 감정은 해소되고 우리는 다시 안정을 찾고 평온을 얻을 수 있다. 감정이라는 것은 상황에 대한 경보 신호라서, 우리가 그 경보를 인식하면 제 역할을 다하고 사라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이를 무시하고 억압하면 그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억압되고 축적되어버린다. 그것이 차곡차곡 쌓이면 마음은 더 왜곡되고 분출되기만을 기다리게 되는데, 심해지면 화병과 같은 몸의 이상 증후나 통증이 되기도 한다.
내 마음속에는 억제되지 않은 것, 억제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제 그 것이 큰소리로 말하려고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정을 알아보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것이 부정적이고 부끄러운 감정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몰락을 감행해야 한다. 그래야 그 부정적인 감정이 마음속에 갇혀 있지 않고 자유롭게 발산되고 날아가버릴 수 있다. 특히 감정은 그저 표현해주고 알아봐주기만 해도 금세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부정적인 감정을 부정하려 애쓰고, 빨리 사라지게 하고 싶어 그 감정을 회피하고 억압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결국 그 감정은 발산되어 사라지지 못하고 우리 안의 어딘가에 똬리를 틀고 앉아 분출될 날만을 기다리며 끙끙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감정을 몰락시킬 수 있을까? 다행히 감정을 몰락으로 몰고 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저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고, 그것이 나의 감정임을 인정하면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섬 사상이 필요하다.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면 항상 나 자신을 못나게 바라보게 되고, 그 못난 나의 모습을 회피하게 된다. 이때 ‘나는 나, 너는 너!’, ‘이런 감정, 저런 감정’이 모두 가능하다는 섬 사상을 이용하면 그런 거부감을 대폭 완화시켜주기 때문이다.
‘내가 어린아이같이 유치하네! 유치하면 좀 어때, 어차피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하나의 감정인 걸. 유치한 것일 수도 있지만 솔직한 것일 수도 있지!’
‘아, 창피해죽겠네! 에휴, 창피하면 좀 어때! 창피함도 나의 감정인 걸. 창피하다는 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일 뿐이야.’
‘저걸 정말 갖고 싶어! 좀 뻔뻔해 보이면 어때, 어차피 이게 내 본심이잖아! 다른 사람도 내 입장이라면 얼마든지 욕심 낼 만하잖아. 내 본심을 애써 감출 필요는 없지. 뻔뻔한 걸 수도 있지만 솔직한 거야.’
이렇게 우리는 매 순간 우리의 감정에 대해 솔직히 말하고, 섬 사상을 이용하여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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